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신라 진평왕의 사위인 조계룡(曺繼龍)이며, 중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의 사위인 조겸(曺謙)이다. 2015년 인구 조사 기준 366,798명으로, 한국의 성씨 중 인구 순위 28위이다.
개요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토착 성씨이다. 조(曺)씨는 문헌상 10여 개의 본관이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창녕 조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보아 사실상 창녕 단본으로 통한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시조
창녕 조씨의 시조는 조계룡(曺繼龍, 571~651)이다. 그의 탄생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禮香)이 창녕현 고암촌(鼓岩村)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혼기에 이르렀을 때 복중에 병이 생겨 화왕산(火旺山) 용지(龍池)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니 병이 완쾌되었고,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玉玦)이다. 잘 기르면 자라서 경상이 될 것이며 자손만대 번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후 진평왕 48년(626년)에 아들을 낳았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가 붉게 쓰여 있었다.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이 신기하게 여겨 성은 조(曺), 이름은 계룡(繼龍), 자는 인경(鱗卿)이라 하사하였다고 한다. 뒤에 진평왕이 그를 부마로 삼아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하였고, 벼슬은 보국대장군 상주국대도독 총지휘제군사 금자광록대부 태자태사(輔國大將軍 上柱國大都督 總指揮諸軍事 金紫光祿大夫 太子太師)에 이르렀다.
이러한 득성 설화는 조선 영조 때의 《여지도서》, 1832년의 《경상도읍지》, 1895년의 《영남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에는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897년 경상남도 관찰사 조시영(曺始永)이 세운 '창녕조씨 득성지지(昌寧曺氏 得姓之地)' 비석이 있다.
중시조
시조 조계룡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신라 말에 아간시중(阿干侍中)을 지내고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덕공공주(德恭公主)와 혼인하여 부마가 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조겸은 대악서승(大樂署丞, 종8품)을 지냈다.
역사
고려 시대
창녕 조씨 인물들이 정사에 뚜렷하게 행적이 남겨진 것은 고려 후기부터이다. 조겸의 손자 조연우(曺延祐)로부터 조자기(曺自奇)에 이르기까지 8대에 걸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정2품)를 지냈다. 이후 조송무(曺松茂)·조송군(曺松君)·조송학(曺松鶴) 삼형제를 비롯하여 6대에 걸쳐 소감(少監)을 배출하여 창녕 조씨 문중이 크게 중흥하였다.
고려 말기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민수(曺敏修)를 꼽을 수 있다. 조민수는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쳐 공신 2등에 책록되었고, 우왕 초에는 경상도 순문사로 왜구를 격퇴하였다. 1388년(우왕 14) 요동정벌군의 좌군도통사로 출정하였다가 위화도에서 이성계와 함께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문하시중에 올라 창성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이후 이성계 일파와의 갈등으로 유배되어 배소에서 사망하였다.
또한 공민왕 때 찬성사에 오른 조익청(曺益淸)과 시중에 오른 조한룡(曺漢龍) 등이 있다. 조익청은 충숙왕·충혜왕·공민왕 3대에 걸쳐 사직을 보필한 공으로 창녕 조씨 중 유일하게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다. 조한룡의 아버지 조정통(曺精通)은 바둑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오룡(五龍) 집안'이라 불렸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 창녕 조씨는 문과 급제자 113명, 무과 급제자 202명, 상신(相臣) 1명, 공신 7명을 배출하였다.
조석문(曺錫文)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영의정에 올랐다. 청렴한 대신으로 알려졌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조상치(曺尙治)는 세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집현전 부제학을 지냈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후학을 길렀다. 자신의 묘비에 '노산조 부제학 포인 조상치의 묘(魯山朝副提學逋人曺尙治之墓)'라 쓰라고 유언하여 절의를 지켰다. 정조 때 충정(忠貞)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조위(曺偉, 1454~1503)는 호 매계(梅溪)로, 성종 때의 대문장가이다. 그의 자형은 점필재 김종직이다. 홍문관 관료들과 함께 《두시언해(杜詩諺解)》를 완성하고 서문을 썼으며, 《만분가(萬憤歌)》를 지었다. 저서로 《매계집(梅溪集)》이 있고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그의 동생 조신(曺伸)도 시문에 능하여 중종의 명으로 《2륜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조식(曺植, 1501~1572)은 호 남명(南冥)으로,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이다.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으며, 실천적 유학을 중시하여 인(仁)을 중시한 퇴계 학파와 달리 의(義)를 중시하였다. 그의 문하에서는 곽재우, 정인홍 등 많은 의병장이 배출되어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다. 광해군 때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貞)의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 《남명집》, 《남명학기》, 《유편》, 《파한잡기》 등이 있다.
조탁(曺倬)은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하여 정난선무공신에 책록되었고, 부흥책십조를 올려 국무에 시행하게 하였다. 그가 소장했던 《국조보감》을 진헌하여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인구 변화
- 1985년: 72,213가구, 299,669명
- 2000년: 105,282가구, 338,222명
- 2015년: 366,798명
분파
창녕 조씨는 약 49여 개의 분파로 나뉜다.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다.
감사공파(監司公派), 낭장공파(郎將公派),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만호공파(萬戶公派), 문익공파(文翊公派), 문장공파(文莊公派), 문정공파(文貞公派), 문간공파(文簡公派), 목사공파(牧使公派),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병조참의공파(兵曹參議公派), 부사직공파(副司直公派), 부위공파(副尉公派), 병사공파(兵使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 시직공파(侍直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사의공파(司議公派), 사성공파(司成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석당공파(石塘公派), 성시공파(成世功派), 송학공파(松鶴公派), 수찬공파(修撰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양평공파(襄平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직장공파(直長公派), 장양공파(壯襄公派), 좌시중공파(左侍中公派), 중추공파(中樞公派), 지중추공파(知中樞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찬성공파(贊成公派), 청간공파(淸澗公派), 청구당공파(靑邱堂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충간공파(忠簡公派), 충순위공파(忠順衛公派), 충정공파(忠貞公派), 충익공파(忠翼公派), 취원당파(聚遠堂派), 태복경공파(太僕卿公派), 태학사공파(太學士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판윤공파(判尹公派), 헌납공파(獻納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희천공파(熙川公派), 효강공파(孝康公派)
이 중 양평공 조익청의 후손이 전국 창녕 조씨의 약 6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항렬
창녕 조씨는 고려 말기의 인물로 추정되는 삼송(三松) 형제(송무·송군·송학)를 1세로 하여 세대수를 초기화하였다. 2017년 창녕조씨 대종회에서 새롭게 제정한 표준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의 원칙은 오행(五行)인 목화토금수를 부수로 하는 글자로 정하였다.
| 세대 | 항렬자 |
|---|---|
| 22세 | ○승(承) |
| 23세 | 병(秉)○ |
| 24세 | ○환(煥) |
| 25세 | 규(圭)○, 희(喜)○, 재(在)○ |
| 26세 | ○현(鉉), ○호(鎬), ○종(鐘) |
| 27세 | 영(永)○, 해(海)○, 수(洙)○ |
| 28세 | ○근(根), ○식(植), ○목(穆) |
| 29세 | 용(容)○, 형(炯)○, 연(然)○ |
| 30세 | ○재(載), ○곤(坤), ○훈(塤) |
| 31세 | 일(鎰)○, 건(鍵)○, 용(鏞)○ |
| 32세 | ○태(泰), ○순(淳), ○연(淵) |
| 33세 | 동(東)○, 상(相)○, 영(英)○ |
| 34세 | ○섭(燮), ○열(烈), ○걸(杰) |
| 35세 | 균(均)○, 중(重)○, 원(垣)○ |
| 36세 | ○용(鎔), ○진(鎭), ○석(錫) |
| 37세 | 윤(潤)○, 준(準)○, 문(汶)○ |
| 38세 | ○직(稷), ○백(栢), ○표(杓) |
| 39세 | 희(熙)○, 영(煐)○, 형(螢)○ |
| 40세 | ○육(堉), ○돈(墩), ○배(培) |
| 41세 | 전(鐫)○, 전(銓)○, 찬(鑽)○ |
| 42세 | ○호(浩), ○하(河), ○락(洛) |
| 43세 | 화(和)○, 정(楨)○, 환(桓)○ |
| 44세 | ○훈(勳), ○묵(黙), ○우(愚) |
집성촌
서울·경기·강원
-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산리
-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어리미, 주문진읍 교항리
경상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리, 중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중구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봉산면 인의리·신리·예지리, 대항면 운수리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매호리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리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오계리·원기리, 대창면 병암리, 화남면 귀호리·금호리·삼창리, 화북면 오산리, 화산면 화산리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연금리, 무안면 웅동리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대하리, 시천면 사리
- 경상남도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도야리, 고암면 간상리·대암리·원촌리, 대합면 이방리, 유어면 세진리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도옥리·봉곡리·안성리, 봉산면 김봉리·압곡리, 쌍책면 덕봉리
충청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신동리, 제원면 제원리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
-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전라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
-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금산리
-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금현리·성월리
-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내리
-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대곡리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대안리
-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 당고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남풍리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의신면 침계리, 임회면 용호리, 지산면 앵무리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수만리, 동면, 백아면, 청풍면, 한천면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백학리, 백수읍 천마리
북한
- 황해도 봉산군 영천면 가산리
-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광평리·부암리
-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원로리
- 평안북도 박천군 남면 남송리
- 함경남도 고원군 하발면 대수곡리
-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도룡리
주요 인물
고려 시대
- 조민수(曺敏修): 고려 말의 장군. 위화도 회군 당시 좌군도통사로서 이성계와 함께 회군, 문하시중 역임
- 조익청(曺益淸): 고려 말 명신. 충숙왕·충혜왕·공민왕 3대를 보필, 좌정승·하성부원군, 공민왕 묘정에 배향
- 조한룡(曺漢龍): 고려 시중 역임, 청간(淸簡)의 시호
- 조정통(曺精通): 조한룡의 아버지, 시중 역임,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 급제하여 '오룡 집안'
조선 시대
- 조석문(曺錫文): 세조 때 영의정, 이시애의 난 평정, 시호 충간
- 조상치(曺尙治): 세종 때 문과 장원, 집현전 부제학, 단종에 대한 절의
- 조위(曺偉): 성종 때 대문장가, 《두시언해》 편찬, 호 매계, 시호 문장
- 조신(曺伸): 조위의 동생, 시인, 《2륜행실도》 편찬
- 조식(曺植): 조선 중기 대유학자, 남명학파의 거두, 시호 문정
- 조탁(曺倬): 임진왜란 때 왕 호종, 정난선무공신, 사후 영의정 추증
- 조계형(曺繼衡): 연산군 때 호조참판, 정국공신
- 조석중(曺錫中): 정조 때 성씨를 조(曺)로 환원, 《창녕조씨지선록》 편찬
근현대
- 조만식(曺晩植, 1883~1950): 호 고당. 일제강점기 물산장려운동 주도, '조선의 간디'로 불림. 해방 후 북한에 남아 공산화에 맞서다 처형.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 조봉암(曺奉岩, 1898~1959): 호 죽산. 초대 농림부장관, 진보당 결성, 대통령 선거 출마.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사형. 2009년 복권
- 조성환(曺成煥, 1875~1948): 호 청사.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북로군정서 군사부장.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조국(曺國, 1965~): 전 법무부장관, 전 청와대 민정수석, 서울대학교 교수
- 조훈현(曺薰鉉, 1953~): 프로 바둑기사 9단, 전 국회의원
- 조규현(曺圭賢, 1988~): 보이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 조미연(曺薇娟, 1997~):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 조유리(曺柔理, 2001~): 걸그룹 IZ*ONE 출신 솔로 뮤지션
- 조세호(曺世鎬, 1982~): 개그맨, MC
- 조희팔(曺喜八, 1965~2011): 대한민국 최대 규모 사기 사건의 주범
- 조희대(曺喜大, 1957~): 대한민국 제17대 대법원장
- 조희연(曺喜昖, 1956~): 사회학자,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 조규성(曺圭成, 1998~): 축구 선수, FC 미트윌란 소속
- 조해진(曺海珍, 1965~): 국회의원
- 조경식(曺京植, 1941~): 전 환경부장관, 전 농림수산부장관
- 조규홍(曺圭鴻, 1964~): 보건복지부장관
- 조정환(曺正煥, 1946~): 전 제2작전사령관, 전 육군참모총장
- 조영길(曺永吉, 1947~): 전 합동참모의장, 전 국방부장관
- 조수미(曺秀美, 1962~): 성악가(소프라노)
- 조성모(曺誠模, 1977~): 가수
- 태진아(曺芳憲, 본명 조방헌, 1953~): 트로트 가수
- 송가인(曺恩心, 본명 조은심, 1986~): 트로트 가수
관련 유적
-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소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 화왕산성 내 용지(龍池) 3곳과 1897년 조시영이 세운 득성비가 있음
- 김해 산해정(山海亭):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 조식이 후학을 양성하고 유학자들과 교류하기 위하여 세운 정자
- 예암서원(禮巖書院):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 조이추(曺爾樞)를 배향
- 영광 창녕조씨 관해공 가옥: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백학리. 국가등록문화재
참고 문헌
- 《창녕조씨대동보》
- 《조선씨족통보》
- 《여지도서》
- 《경상도읍지》
- 《영남읍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 《증보문헌비고》
- 통계청 인구조사 (1985, 2000,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