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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고곡산성

창녕 고곡산성(昌寧 鼓谷山城)은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 산193번지에 위치한 산성이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당시에는 '구진산성(九鎭山城)'이라는 명칭이었으나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지정 면적은 87,273㎡이다.

명칭 유래

1997년 이전까지는 '구진산성'으로 불렸으나, 1997년 지표조사 이후 서쪽의 구진산 정상부에 있는 산성을 구진산성으로, 이 산성은 마을 이름을 따서 '고곡산성'으로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구진산성'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9개의 진을 펼쳐 왜군을 물리쳤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지와 형태

고곡산성은 구진산(해발 307.9m) 자락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낮은 야산(해발 84.5m)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산의 동쪽 6부 능선을 타고 서·남으로 향하면서 타원형을 그리고 있다. 성곽의 둘레는 542.5m, 성벽의 너비는 약 5.2m이다. 성벽은 내벽과 외벽을 모두 돌로 쌓아 올린 협축식(夾築式) 성벽이며, 외벽 하부에는 삼각형 기단보축(基壇補築)을 시설하였다. 체성에는 신라의 일반적인 성벽 쌓기 기술인 바른층 쌓기 방식이 적용되었다. 현재 동문 및 동벽과 남벽 일부 구간이 복원·정비된 상태이며, 나머지 구간은 많이 무너져 내려 원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축조 시기와 역사

이 산성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전통적으로는 이 지역이 옛 가야의 영토였다는 점과 성을 쌓은 방법으로 보아 가야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되어 왔으며,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침입한 왜군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 쌓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낙동강 전선의 일부로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한편 HeritageWiki의 해설문에 따르면 고곡산성은 전형적인 신라 석축산성의 성벽 쌓기 기술을 보이고 있으며, 목마산성과 비슷한 시기인 6세기 중반 신라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에서 내륙으로 진출하는 적을 방어할 뿐 아니라 이 지역을 관할하는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탁월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2년 창녕군이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에서 석축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로 토제(土堤)를 활용한 가야시대의 토목기술이 확인되었고, 성벽 내부에서는 5세기대 비화가야(非火伽耶)의 토기편들이 출토되어, 이 산성이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인 비화가야에 의해 축조된 산성임이 밝혀졌다. 이는 기존에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축조 시기가 가야 시대로 소급됨을 의미한다.

지정 현황

  • 지정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
  • 지정일: 1983년 8월 6일 (문화재자료 지정), 1983년 12월 20일 (고시)
  • 명칭 변경: 2018년 12월 20일 ('구진산성' → '창녕 고곡산성')
  • 소재지: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 산193번지
  • 수량/면적: 87,273㎡
  •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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