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및 망명 에드워드는 잉글랜드 국왕 애설레드 2세(Æthelred the Unready)와 노르망디 공작 리샤르 1세의 딸 엠마(Emma of Normandy) 사이에서 태어났다. 덴마크의 침략과 점령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약 30년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망명 생활을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통치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왕위 계승 및 통치 1042년 이복형 하르다크누트(Harthacnut)가 사망하자, 에드워드는 잉글랜드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그의 통치 초기에는 덴마크의 위협으로부터 잉글랜드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에드워드 시대의 잉글랜드는 강력한 백작들, 특히 웨식스 백작 고드윈(Godwin) 가문과 그의 아들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의 영향력이 컸다. 왕은 노르망디에서의 오랜 망명 생활로 인해 노르만 문화와 인물들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이는 잉글랜드 궁정에 노르만 출신 인사들이 등용되는 배경이 되어 일부 앵글로색슨 귀족들과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정치적 야망보다는 종교적 의무와 신앙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인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을 설립하고 재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1065년에 봉헌되었으며, 에드워드의 주요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망 및 왕위 계승 위기 에드워드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잉글랜드 왕위 계승 문제를 촉발시켰다. 1066년 1월 5일 에드워드가 사망하자, 웨식스 백작 해럴드 고드윈슨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정복왕 윌리엄)은 에드워드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주장하며 잉글랜드를 침공했고, 이는 노르만 정복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산 및 시성 참회왕 에드워드는 1161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의 축일은 10월 13일이며, 잉글랜드의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숭배받는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지하에 안치되어 있으며, 사원 내의 그의 성소는 중세 순례의 중요한 장소였다. 그의 통치는 잉글랜드 사회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죽음은 잉글랜드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노르만 정복을 직접적으로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