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본부(参謀本部, 산보혼부)는 1871년부터 1945년 11월 30일까지 존재한 일본 제국 육군의 최고 군령 기관이다. 독일 제국 육군의 군제를 본떠 1878년 12월에 육군성 참모국이 독립하는 형태로 창설되었으며, 정부 기관인 육군성과는 별도로 대원수인 천황에게 직속되어 육군의 통수(統帥), 작전 계획의 수립 및 지휘·수행을 담당하였다.
연혁
1871년 7월, 병부성(兵部省) 산하에 육군참모국이 설치된 것이 시초이다. 1872년 2월 병부성이 육군성과 해군성으로 분할되면서 육군성 참모국이 되었고, 1873년 4월 제6국으로 개칭되었다가 1874년 2월 다시 참모국으로 환원되었다. 1875년 6월에는 육군성의 외국(外局)으로서 참모국이 설치되었다.
1878년 12월, 참모국이 참모본부로 개칭되면서 육군성으로부터 독립하여 군정(軍政)과 군령(軍令)이 분리되었다. 이로써 군정은 육군성, 군령은 참모본부가 각각 관장하게 되었다. 수장은 참모본부장이었다.
1886년 3월에는 참모본부 내에 육군부와 해군부가 함께 설치되어, 일본 근대사에서 유일하게 육해군이 통합된 통수 조직이 운영되었다. 수장은 참모본부장(황족 육군대장)이었고 차장 2명이 두어졌다. 1888년 5월에는 제국 전군의 참모장으로서 참군(参軍, 황족)이 설치되고, 그 아래 육군참모본부와 해군참모본부가 설치되었다.
1889년 3월, 참모본부의 제도가 완성되었다. 참군은 참모총장으로 개칭되었고, 육군의 군령을 관장하는 참모본부가 설치되었다. 해군에서는 해군대신 소속의 해군참모부가 설치되었으나 군령은 참모본부가 통괄하였다. 1893년 5월에는 해군군령부가 평시에 한해 육군 참모본부와 대등한 군령 기관이 되었고, 1903년 12월에는 전시에도 대등한 관계가 되었다.
참모본부는 처음에 도쿄 지요다구 나가타초(三宅坂 일대)에 위치하였으나,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 이치가야다이(市ヶ谷台)의 육군사관학교 터로 이전하였다. 1945년 11월 30일, 일본의 패전에 따라 폐지되었다.
조직과 역할
참모본부의 수장인 참모총장은 육군대신·교육총감과 함께 '육군삼장관(陸軍三長官)'으로 불렸다. 참모총장은 원칙적으로 육군대장 또는 육군중장 중에서 임명되었으며, 천황에게 직속하여 작전 계획과 군령 전반을 관장하였다.
폐지 당시의 조직은 총무부, 제1부(작전·편제동원), 제2부(정보·첩보·모략), 제3부(수송·통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부 산하에는 작전과(제2과)와 편제동원과(제3과)가 있었고, 제2부 산하에는 러시아과·구미과·지나과·모략과 등이 편성되어 대륙 침략 정책의 정보 및 작전을 담당하였다. 또한 1896년부터 1943년까지는 제4부(전사 편찬)가, 1899년부터 1908년까지는 제5부가 존재하였다.
외국(外局)으로는 육지측량부, 육군기상부, 육군중야학교, 육군대학교 등을 관할하였다.
역대 참모총장
초대 참모총장은 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有栖川宮熾仁親王, 1889~1895)이었으며, 이후 고마쓰노미야 아키히토 친왕, 가와카미 소로쿠, 오야마 이와오, 야마가타 아리토모, 고다마 겐타로, 하세가와 요시미치, 우에하라 유사쿠, 가나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 스기야마 겐, 도조 히데키, 우메즈 요시지로 등이 역임하였다. 마지막 참모총장은 우메즈 요시지로(1944~1945)였다.
역사적 의의
참모본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적 군사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창설된 기관으로, 통수권의 독립을 통해 군이 내각의 통제로부터 이탈하는 구조적 조건을 마련하였다. 이는 이후 일본 군국주의의 확대와 대륙 침략 정책 수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기관으로 평가된다. 또한 참모본부는 조선 및 만주 지역에 대한 군사 정탐 활동, 지도 제작, 역사 연구 등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식민주의 역사학(만선사관)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학계에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