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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폰지

찰스 폰지(Charles Ponzi, 1882년 3월 3일 ~ 1949년 1월 18일)는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인 사기꾼이다. 본명은 카를로 피에트로 조반니 구글리엘모 테발도 폰치(Carlo Pietro Giovanni Guglielmo Tebaldo Ponzi)이며, 이탈리아 왕국 에밀리아로마냐주 라벤나현에서 태어났다.

1903년 11월 15일 2.5달러만을 손에 쥐고 미국 보스턴에 도착한 폰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캐나다 몬트리올로 건너가 자로시 은행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은행에서 신규 고객의 예금으로 기존 고객의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을 목격하였고, 이후 수표 위조 혐의로 3년간 수감되었다. 출소 후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밀입국 사기 혐의에 연루되어 다시 애틀랜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19년 여름, 보스턴 스쿨 스트리트 27번지에 사무실을 열고 국제반신권(IRC, International Reply Coupon)의 가격 차익을 이용한 투자 계획을 구상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국제반신권을 미국에서 달러로 교환하면 차액이 발생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폰지는 투자자들에게 45일 내에 50%, 90일 내에 100%의 수익률을 약속하며 투자금을 모았다.

1920년 1월 '증권거래사'를 설립한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투자액이 급증하여 7월 말에는 하루에 100만 달러를 모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국제반신권을 대량으로 매매하여 이익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사기 수법이었다. 초기 투자자 18명에게 1,800달러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53,000장의 국제반신권이 필요했고, 이후 15,000명의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려면 타이타닉호 크기의 배에 국제반신권을 가득 채워 유럽에서 미국으로 운송해야 할 정도로 실제 사업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보스턴 포스트(Boston Post)의 폭로 기사로 인해 사기 행각이 드러났으며, 이로 인해 보스턴 포스트는 1921년 공공 서비스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폰지의 사기로 인한 피해 규모는 약 2,0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2억 2,500만 달러)에 달했으며, 하노버 트러스트 은행을 비롯한 여러 은행이 도산하였다. 투자자들은 1달러당 30센트도 안 되는 금액만을 돌려받았다.

폰지는 1934년까지 수감된 후 이탈리아로 추방되었으며, 배우자 로세 녜코와는 1937년 이혼하였다. 이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건너가 항공사 에이전트와 통역가 등으로 일하며 가난에 시달렸고, 1949년 1월 18일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병원에서 66세로 사망하였다.

찰스 폰지가 이러한 사기 수법을 최초로 고안한 인물은 아니었으나, 그의 사례가 가장 널리 알려지면서 이러한 유형의 금융 사기 수법을 가리켜 '폰지 사기(Ponzi scheme)'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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