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Wirgman (1832년 8월 31일 ~ 1891년 2월 8일)은 영국 출신의 화가·만화가·삽화가 겸 저널리스트로, 메이지 시대 초기 일본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기본 정보
- 국적: 영국
- 출생: 1832년 8월 31일, 런던
- 사망: 1891년 2월 8일, 일본 요코하마
- 직업: 화가, 만화가, 삽화가, 특파원
생애 및 활동 워그먼은 1857년 무렵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의 특파원 겸 삽화가로 제2차 아편 전쟁 취재를 위해 중국 광둥을 방문했다. 1861년 나가사키를 거쳐 영국 공사 러더퍼드 올콕의 일행을 따라 에도로 이동하던 중, 같은 해 7월 5일 도젠지 사건(제1차 도젠지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이를 기사와 스케치로 보도했다.
1862년에는 일본에 체류하던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국의 풍자만화 잡지 《펀치》를 본뜬 월간지 《재팬 펀치(Japan Punch)》를 창간했으며, 이는 일본 최초의 만화 잡지로 평가된다. 동지는 1887년 봄까지 간헐적으로 발행되었다.
1863년 일본인 여성 오자와 가네와 결혼했고, 1864년부터 1867년까지 사진작가 펠리체 베아토와 함께 "베아토 앤 워그먼(Beato & Wirgman, Artists and Photographers)"이라는 상회를 운영하며 사진과 삽화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또한 사쓰에이 전쟁, 시모노세키 전쟁 등을 취재하여 런던에 기사와 삽화를 보냈다.
서양화 교육에도 힘써 고세다 요시마츠, 가노 도모노부, 다카하시 유이치 등 여러 일본인 화가를 가르쳤으며, 우키요에 화가 고바야시 기요치카도 그의 문하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밖에 영어 교사로도 잠시 활동했다.
1885년에는 저서 《일본의 스케치북(A Sketch Book of Japan)》을 출간했고, 1887년 영국으로 귀국하여 동생 시어도어 블레이크 워그먼과 함께 런던에서 전시회를 연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1891년 요코하마에서 58세로 사망했으며,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참고 일본에서는 매년 그의 기일(2월 8일)을 기려 요코하마 지역 문예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추모 행사가 열린다고 알려져 있다. 동생 시어도어 블레이크 워그먼(Theodore Blake Wirgman, 1848~1925) 역시 화가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