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운혁(車云革, 1393~1467)은 조선 전기의 무관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홍기(洪器), 호는 쌍청당(双淸堂), 시호는 강렬(剛烈)이다. 아버지는 차견질(車堅質)이다.
생애 및 활동
- 고려 말 성리학의 대가였던 숙부 차원부(車原頫)가 하륜 등에 의해 살해되자 이에 연루되어 길주·회령 등지로 유배되었다.
- 세종 때 숙부의 억울함이 밝혀져 신원되자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이후 어모장군 겸 사복시장에 임명되었다.
- 단종이 승하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도봉산에 은거하였다.
-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선봉대장이 되어 토벌에 나섰으나, 부장 최윤손의 배신으로 이시애에게 잡혀 단천(端川)에서 순절하였다.
충신정려문
- 1860년(철종 11), 조정에서 차운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려졌다.
- 이 정려문은 현재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리에 위치해 있다.
- 화성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같은 시기에 시호 강렬(剛烈)도 함께 내려졌다.
상훈
- 1469년(예종 1):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훈되었다.
- 후손들은 화성 지역에 세거하며 연안 차씨 강렬공파(剛烈公派)를 형성하였고, 1821년(순조 21)에는 충훈부로부터 공신 후손임을 공인받았다.
관련 유물
- 『차운혁 쌍청당실기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7호) - 차운혁의 행적과 이시애의 난 진압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 연안차씨 집안문서(화성시 향토유적 제15·16호) - 차운혁 충신정려 관련 문서와 후손들의 고신(告身) 등이 포함되어 있다.
요약: 차운혁 충신정려문은 조선 철종 11년(1860년), 이시애의 난에서 순절한 차운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하사한 정려(旌閭)로, 현재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리에 소재하며 화성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