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코벳(Jim Corbett, 본명 에드워드 제임스 코벳, 1875년 7월 25일 ~ 1955년 4월 19일)은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난 사냥꾼이자 자연 보호가, 작가이다. 인도 북부의 쿠마온(Kumaon) 지역에서 다수의 식인 호랑이와 표범을 사살한 것으로 유명하며, 생애 후반에는 야생동물 보호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생애 초기와 가계
짐 코벳은 1875년 7월 25일 인도 북부의 나이니탈(Nainital)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9세기 초 영국 제도에서 인도 아대륙으로 이주한 여러 가족의 후손으로, 벨파스트 출신의 조부모가 1815년 인도에 도착한 이력을 가진다. 아버지 크리스토퍼 윌리엄 코벳은 육군 군의관으로 복무한 후 나이니탈의 우체국장을 지냈다. 어머니 메리 제인 코벳은 앵글로아일랜드계 출신으로, 나이니탈 지역에서 사실상 최초의 부동산 중개인 역할을 하였다.
코벳은 어린 시절부터 구르니 하우스(Gurney House) 주변의 정글을 탐험하며 현지 야생동물의 습성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았으며, 여덟 살에 처음으로 총을 선물받아 사냥과 동물 추적 기술을 익혔다. 열 살 무렵에는 군용 소총을 빌려 처음으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표범을 사살하였다.
철도 노동과 제1차 세계대전
코벳은 17세에 가정 형편상 공학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비하르에서 연료 검사관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895년부터 22년간 갠지스강의 모카메 가트(Mokameh Ghat)에서 화물 운송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지역 주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지역 학교 설립에도 기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나이가 많아 처음에는 지원이 거부되었으나, 1917년 대위로 임관하여 쿠마온 지역에서 노동군단을 조직하였다. 그는 5,000명을 모집하여 서부 전선으로 파견되었고, 그의 개인 부대는 70th 쿠마온 중대라 불렸다. 전쟁 기간 동안 그의 부대 500명 중 단 한 명만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1919년 제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여 보급 및 진압 작전에 관여하였다.
식인 동물 사냥
코벳은 1907년 나이니탈 부지사(副知事)의 요청을 받아 참파와트 호랑이(Champawat Tiger) 사살에 나섰다. 이 암컷 호랑이는 네팔에서 200명을 사망시킨 후 인도로 이동하여 총 400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코벳이 이를 사살한 후 영국 정부로부터 명예 소총을 하사받았다.
이후 코벳은 파나르 표범(400명 이상 살해), 루드라프라야그 표범(125명 살해), 초가르 호랑이 등 다수의 식인 동물을 사살하였다. 그는 1947년까지 수십 년간 인도 북부에서 식인 호랑이와 표범을 추적·사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호 운동과 작가 활동
코벳은 1920년대부터 아프리카 동부를 오가며 자연 환경 비교를 시작하였고, 이후 인도 내 산림 남벌과 남획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보호운동에 전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야생동물 사진 촬영을 장려하고, 트로피 사냥에 반대하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1934년에는 인도 최초의 국립공원 설립에 기여하였으며, 이 공원은 그가 사망한 후인 1957년 짐 코벳 국립공원으로 개명되었다.
코벳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44년 출간된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Man-Eaters of Kumaon)이다. 이 책은 국제적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후 《루드라프라야그의 식인 표범》(1948), 《나의 인도》(My India, 1952), 《정글 로어》(Jungle Lore, 1953), 《사원 호랑이》(The Temple Tiger, 1954) 등의 작품을 추가로 출간하였다. 이 책들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만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코벳은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원병 모집 장교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버마 전역에 투입될 연합군 병사들을 위한 정글 생존 훈련 교관으로 임명되어 식수 확보, 독사 구분, 식용 식물 판별, 동물 추적 등의 기술을 가르쳤다.
코벳은 결혼하지 않았으며, 평생 누나 매기와 함께 살았다. 인도 독립 운동의 격화와 정치적 불안정을 우려한 그는 1947년 인도를 떠나 동아프리카 케냐의 뉘예리(Nyeri)로 이주하였다. 그는 1952년 2월, 트리톱스 호텔에서 당시 영국 왕세녀였던 엘리자베스 공주(훗날 엘리자베스 2세)가 머물 때 야생동물 관찰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그 숙박 중 아버지 조지 6세의 사망으로 즉위하는 일이 발생하여, 코벳은 이를 기록한 유명한 방명록 문구를 남겼다.
코벳은 1955년 4월 19일 케냐 뉘예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으며, 현지 성공회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산과 기념
코벳 사후, 인도의 하일리 국립공원은 짐 코벳 국립공원으로 개명되었다. 1968년에는 인도차이나 호랑이 아종이 그의 이름을 따서 판테라 티그리스 코베티(Panthera tigris corbetti)로 명명되었다. 그의 저서들은 사후에도 계속 재출간되어 널리 읽히고 있으며, 칼라둥기(Kaladhungi)에 있던 그의 집은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는 인도 쿠마온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카펫 사히브'(Carpet Sahib)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코벳은 생애 동안 총 19마리의 식인 호랑이와 14마리의 식인 표범을 사살한 것으로 널리 인용되지만, 개별 수치에 대해서는 출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는 사냥꾼에서 자연 보호가로 전향한 인물로서, 인도와 세계 야생동물 보호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