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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하씨

진주 하씨(晋州河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진양 하씨(晋陽河氏)라고도 불린다. 시조는 하공진(河拱辰)과 하진(河珍)의 두 계파가 있으며, 각각 시랑공파와 사직공파로 분파된다. 본래는 같은 뿌리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고려 초기의 시조로 볼 수 있는 복야공(僕射公)의 이름을 상고할 수 없어, 그 후손인 사직공파 하진과 시랑공파 하공진을 각 파조의 시조로 삼아 분파되었다.

역사

진주 하씨는 백제 시대부터 존속한 성씨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개국 당시 진주(진양) 지방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토착 호족 세력이었으며, 고려 개국에 협력하여 태조 왕건으로부터 토성을 분정받았다. 고려 초기부터 재경관인과 재지세력으로 분화되어 활동하였고, 일부 인물들은 고려 말기에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신진사대부 대열에 합류하였다.

조선 문종 2년(1451년)에는 《경태보(景泰譜)》가 편찬되었는데, 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안동권씨 성화보보다 25년 앞서고, 세종 2년(1423년)에 편찬된 문화류씨 영락보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족보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현재는 세보 서문만 국립중앙전자도서관에 남아 있다. 이후 1606년에 《진양하씨세보》를 발행하고, 숙종 46년(1719년)에 기해보를 출간하였다.

시조

하공진(河拱辰)은 진주 출신으로, 고려 성종 때 압강도구당사가 되었고 목종 때 중랑장으로 왕의 경호를 담당하던 중 강조의 정변에 가담하게 된다. 현종 때 좌사낭중을 역임하였고, 거란 2차 침입 시 현종을 알현하고 외교술을 발휘하여 거란군을 철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거란 황제 성종이 그의 인품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거란국의 신하로 대우하려 하였으나, 하공진은 고려의 신하임을 잊지 않고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적발되어 순국하였다. 사후 문하시랑평장사에 추증되었다.

하진(河珍)은 고려 정종과 문종 때 사직(司直)을 지낸 문관 관료이다.

본관

진주(晋州)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거렬성(居烈城)이었다. 663년 신라에 편입되어 거타주가 설치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다. 1896년 경상남도 진주군으로 개편되었고,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상도 진주목의 토성(土姓)으로 정(鄭)·하(河)·강(姜)·소(蘇) 4성이 기록되어 있다.

인구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진주 하씨는 160,307명, 진양 하씨는 65,836명으로 총 226,143명이다.

주요 인물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하륜(河崙)과 하연(河演)이 영의정을 역임하였으며, 두 사람 모두 종묘배향공신이다. 하륜은 조선 태종 대에 영의정을 지내며 국가 제도 정비와 행정 체계 확립에 기여하였다. 하연은 세종과 문종 대에 영의정을 역임하고 문종의 왕세자 시절 스승이었으며, 단종 즉위 시 섭정을 맡았다. 사육신 중 한 명인 하위지(河緯地)도 진주 하씨 출신으로, 단종복위를 시도하다 처형되었다. 이 외에도 조선 시대에 상신 2명, 대제학 1명, 문과급제자 45명, 무과급제자 88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

경상남도 진주시를 비롯하여 전라남도 진도군, 경상북도 영천시,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등이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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