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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

진주 촉석루(晉州 矗石樓)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晉州城) 내의 누각이다. 남강(南江)의 바위 벼랑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으로 평가받으며, 진주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일명 장원루(壯元樓)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전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남장대)로, 평시에는 과거 시험(향시)을 치르는 고시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연혁

촉석루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241년(고려 고종 28년) 진주성 축성 당시 부사 김충광(金忠光) 등이 창건하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처음 건립되었다는 설이다. 이후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1593년(선조 26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이 진주성을 함락시킨 후 촉석루에서 승전연을 벌일 때, 기생 논개(論介)가 왜장을 끌어안고 촉석루 아래 의암(義巖) 바위에서 남강으로 몸을 던져 순절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촉석루는 1618년(조선 광해군 10년) 경상우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재건하였고, 1725년(영조 1년) 진주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는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촉석루에 대한 실측도면을 작성하였다.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이후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현재의 건물을 재건하였다. 재건 당시 국립박물관 학예연구관 임천과 대목장 임배근이 공사 총책임을 맡았다.

문화재 지정 현황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명칭이 '진주 촉석루'로 변경되었다. 2020년 6월 1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촉석루가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으로 승격되지 못한 이유는 한국전쟁 이후 1960년 재건 당시 원형 복원 여부에 대한 논란 때문이었다. 그러나 2025년 경남연구원은 '진주성 촉석루의 국가지정유산 보물 환원을 위한 제언'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재건이 1937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실측도면과 문교부 승인 준칙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며 보물 환원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건축 구조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단층 팔작집 형태이다. 2012년에는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에 포함된 바 있다.

관련 유적

촉석루 좌측에는 논개의 의기를 추모하는 의기사(義妓祠)가 있으며, 아래 계단을 통해 의암(義巖)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의암 중간 부분에는 의암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1780년(정조 5년) 19세의 나이로 진주에 들러 촉석루에서 팔검무(진주검무)를 보고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이라는 시를 지었고, 〈진주의기사기(晋州義妓祠記)〉를 지어 의기사에 걸게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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