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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법

진대법(賑貸法)은 고구려 고국천왕(故國川王, 재위 179~197)이 194년(고국천왕 16년)에 시행한 빈민 구호를 목적으로 한 곡물 대여 제도이다. 한자 '진(賑)'은 흉년에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을 주는 것을, '대(貸)'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후에 회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경 및 시행

《삼국사기》 고구려 고국천왕 본기에 따르면, 고국천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가난하여 끼니를 잇지 못해 우는 사람을 만나 그 사정을 듣고 불쌍히 여겨 이 제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상(國相)이었던 을파소(乙巴素)가 국정을 총괄하고 있던 시기였으나, 을파소 열전에는 진대법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누가 주도적으로 시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운영 방식

진대법은 춘궁기(春窮期)인 3월에서 7월 사이에 관청이 보유하고 있던 곡식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고, 가을 수확이 끝난 후인 10월에 다시 갚게 하는 춘대추납(春貸秋納)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부양해 줄 가족이 없으면서 경제적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주된 구휼 대상이었다. 곡물을 대여할 때는 당장 먹을 양식과 함께 그해 농사지을 종곡(種穀)도 함께 빌려주었다.

이자 및 성격

진대법에 이자를 받았다는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일반적인 곡물 대여 제도의 운영 지속성을 고려할 때 일정한 이자가 부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따라서 진대법은 1차적으로 빈민 구휼을 위한 제도였으나, 동시에 농업 생산의 안정과 국가 재정의 유지를 위한 정책적 성격도 지녔다. 또한 백성들이 흉년에 귀족에게 의탁하여 토지를 잃거나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국가의 세수와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역사적 의의

진대법은 한국사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사회 구휼 제도로 평가된다. 이후 고려시대의 의창(義倉), 조선시대의 환곡(還穀) 제도로 이어지는 곡물 대여 구휼 체계의 시초가 되었다. 다만 진대법이 고구려의 완전히 독창적인 제도인지, 당시 중국의 상평창(常平倉) 등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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