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眞男, ?~?)은 백제 삼근왕(三斤王) 시기의 대신으로, 관등은 좌평(佐平)이었다. 백제의 대성팔족(大姓八族) 중 하나인 진(眞)씨 출신 귀족으로,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 출생지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478년(삼근왕 2)에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解仇)와 은솔(恩率) 연신(燕信)이 대두성(大豆城)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자, 진남은 삼근왕의 명령을 받들어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반란 진압에 나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이후 진남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해구의 난은 결국 같은 진씨 출신인 진로(眞老)가 군사 500명으로 토벌하여 해구는 죽고, 연신은 고구려로 도망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진남에 관한 정보는 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삼근왕조의 기록에 근거하며, 그 외의 생애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