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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화

진광화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활약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1911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창화(金昌華)이다. 1942년 사망했다.

생애 초기

진광화는 1925년 평양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서회'에 가입하여 진보적 학생들과 함께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식민지 조국의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9년 12월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에 참가하여 숭덕중학교의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 당국의 추적을 받게 되자 동지들과 함께 중국 남경(南京)으로 망명하였다.

중국에서의 활동

남경에서 오주(五州)중학교에 입학하여 중국어 등을 수학하면서 한국인 학생들의 비밀조직인 '사회과학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33년 오주중학을 졸업하고 광주(廣州)의 중산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한국인 학생단체인 '용진학회(勇進學會)'에 가입했고, 1933년 10월에는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중국 내 항일운동과 반봉건운동을 주도하였다.

1935년 여름에는 중국공산당과 연계된 '중국청년항일동맹'에 가입했다. 같은 해 12월 12일 중산대학 학생 3,000여 명이 참가한 항일시위운동 '12·12학생운동'의 주요 지도자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광동 군벌의 탄압으로 1937년 1월 중순 체포되어 잠시 옥고를 치렀다.

1936년 7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고, 1937년 6월 중산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광주 교외 농촌의 소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광주청년항일선봉대' 등 항일조직을 건립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인 연안(延安)의 중앙당학교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이론을 학습하였다.

독립운동 활동과 전사

이후 중국 관내 지역의 한국인 독립운동 조직인 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의 진기로예(晉冀魯豫) 변구 당학교 교무과장과 조직과장을 맡아 활동했다. 1941년 말에는 한국인 항일무장투쟁 조직인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정치위원과 화북조선청년연합회 진기로예 지회장을 겸하였다.

1942년 1월 '조선혁명청년간부학교' 건립에 참여하여 부교장을 맡아 독립운동가 교육에 헌신하였다. 장기간의 독립운동에 따른 과로와 영양실조로 폐렴을 앓고 있었으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의 항일전투에 동참했다.

1942년 5월 일본군의 태항산(太行山) 일대 포위공격에 맞서 '반소탕전(反掃蕩戰)'을 전개하다가 산서성(山西省) 마전(麻田)의 화왕산(花王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중국 하북성(河北省) 한단시 혁명열사능원에 가묘가 있으며, 하북성 섭현 석문촌 뒷산에 묘와 기념비가 있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자료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엮음, 창작과 비평사, 1996)
  • 『독립군의 길따라 대륙을 가다』(조동걸, 지식산업사, 1995)
  • 『조선족혁명렬사전』(박창욱 주편, 遼寧民族出版社,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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