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조공(秦 躁公)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의 군주이다. 생년은 미상이며, 기원전 429년에 사망하였다. 성은 영(嬴)이며, 시호는 조(躁)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진조(趮)공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가계와 즉위
진 조공은 진 여공공(厲共公)의 아들이며, 진 회공(懷公)의 형이다. 기원전 443년 진 여공공이 사망한 뒤 즉위하였으며, 재위 기간은 약 14년(기원전 442년~기원전 429년)으로 기록된다. 나라 이름이 같은 진(秦)과 진(晉)이 혼동되기 쉬우나, 진 조공은 서쪽에 위치한 진(秦)나라의 군주이다.
재위 기간의 주요 사건
- 기원전 442년: 하늘에서 혜성이 관측되었다. 《사기·권6·진시황본기》에 이 기록이 전한다.
- 기원전 441년: 남정(南鄭, 지금의 산시성 한중시 일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 기원전 435년: 6월에 폭우와 눈이 내렸고 일식과 월식이 발생하였다고 《사기·권15·육국연표》에 기록되어 있다.
- 기원전 430년: 주변의 이민족 세력인 의거(義渠)가 진나라를 대규모로 공격하여 위수(渭水) 유역까지 침범하였다. 《사기·권5·진본기》에는 위남(渭南)까지, 《사기·권15·육국연표》에는 위양(渭陽)까지 침범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는 판본에 따라 다르나, 위수에 도달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과 후계
기원전 429년, 진 조공이 사망하여 구리도공(丘里悼公) 남쪽에 묻혔다. 진나라의 중신들은 진 여공공의 아들 중 진 조공의 동생인 회공(懷公)을 진(晉)나라에서 귀국시켜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역사적 평가
진 조공의 재위 기간 동안 진나라는 혜성 관측, 반란, 이민족의 침입 등 국내외적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진 조공 자신에 대한 상세한 정치적 행적이나 평가는 사료에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천문 현상, 자연 재해, 반란, 외부 침입 등 연대기적 사실에 한정된다. 이후 진나라는 조공 시기까지 이어지는 침체기를 거쳐 후대에 진 헌공(獻公), 진 효공(孝公) 대에 이르러 다시 강성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 자료
이 내용은 주로 《사기(史記)》의 《진본기》, 《진시황본기》, 《육국연표》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된 것이다. 《사기색은》 및 왕예창이 쓴 《진사(秦史)》에서 진 조공의 표기에 대한 이견이 제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