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선제(陳宣帝)는 중국 남북조 시대 남진(南陳)의 제4대 황제입니다.
| 항목 | 내용 |
|---|---|
| 성명 | 진욱(陳頊 / Chen Xu) |
| 생몰 | 530년 8월 14일 ~ 582년 2월 17일 |
| 재위 | 569년 ~ 582년 (14년) |
| 연호 | 태건(太建, 569~582) |
| 묘호 | 고종(高宗) |
| 시호 | 효선황제(孝宣皇帝) |
| 부모 | 아버지: 진도담(始興昭烈王), 숙부: 진패선(陳武帝) |
| 형제 | 진천(陳文帝, 陳蒨)의 친동생 |
주요 생애
1. 즉위 과정
- 진패선(무제)의 조카이자 진천(문제)의 친동생으로, 안성왕(安成王)에 봉해짐
- 형 진천이 죽고 조카 진백종(폐제)이 즉위하자 섭정으로 실권을 장악
- 568년(광대 2년), 조카 진백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
2. 태건 북벌(太建北伐)
- 573년(태건 5년), 북제(北齊)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명장 오명철(吳明徹)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게 하여 북벌을 감행
- 회수(淮水) 이남 지역을 대부분 수복하는 성과를 거둠
3. 북주(北周)와의 대결과 쇠퇴
- 577년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자, 선제는 다시 북주를 공격했으나 오명철이 패배하여 포로가 됨
- 579년 북주의 반격으로 장강 이북의 모든 영토를 상실
- 581년 양견(수 문제)이 북주를 찬탈하고 수나라를 세움
4. 최후
- 실의에 빠져 병을 얻어 582년 53세로 사망
평가
- 재위 기간 동안 수리 시설을 정비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사회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됨
- 《진서》에서는 "기량이 너그럽고 후하여 군주의 도량이 있었다"고 평가
- 그러나 북주를 상대로 한 전략적 실책으로 강북 영토를 잃어 남진의 국력이 크게 약화되는 계기를 마련
-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진숙보(진후주)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결국 589년 수나라에 의해 남진이 멸망
가족
- 황후: 유경언(柳敬言) - 진숙보의 어머니
- 아들: 무려 42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그중 장남이 진후주(진숙보)
- 딸: 영원공주(선화부인)는 수 문제 양견의 후비가 됨
- 유명한 딸: 낙창공주(樂昌公主) - '파경중원(破鏡重圓)' 고사의 주인공
한국 역사와의 관련성
-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 진지왕 대건(太建) 8년(576년)에 화랑을 처음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서 '대건'은 바로 진 선제의 연호입니다. 즉, 신라 화랑도의 기원 시점을 설명하는 데 진 선제의 연호가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