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주둔군(支那駐屯軍, 일본어: しなちゅうとんぐん)은 1901년 5월 31일부터 1937년 8월 31일까지 존속했던 일본 제국 육군의 군(軍) 단위 부대이다. 본부는 중국 화베이(華北) 지역의 톈진(天津)에 두었으며, 톈진에 본부를 둔 까닭에 '톈진군(天津軍)'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중화민국 수립 이전에는 '청나라 주둔군(清国駐屯軍)'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기원과 창설
지나 주둔군의 기원은 1900년 의화단 운동(義和團運動) 진압을 위해 일본이 톈진에 파견한 청나라 임시파견대에서 비롯되었다. 의화단 운동이 심화되자 일본은 제5사단을 중심으로 한 증파대를 추가 투입하여 열강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운동을 진압하고 베이징을 점령하였다. 1900년 10월, 제5사단 예하 1개 혼성여단을 청나라 주둔대로 편성하고 나머지 부대는 동원 해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인 1901년 5월에 청나라 임시파견대가 동원 해제되었다. 이후 신축조약(辛丑條約)에 따라 1901년 5월 31일 청나라 주둔군이 창설되었다.
명칭 변경
1912년 4월 26일,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됨에 따라 부대 명칭이 '지나 주둔군'으로 개명되었다.
역할과 주요 사건
지나 주둔군은 의화단 운동 이후 베이징, 톈진, 산하이관(山海關) 등 중국 북부의 요충지에 주둔하며, 주둔 지역 내 일본인 보호와 치안 유지 등을 주요 임무로 하였다. 1936년 4월 18일, 일본과 중국 간 관계 악화에 따라 주둔군 전체 보병 10개 중대를 강화하여 '지나 주둔보병여단'이 창설되었다.
1937년 7월 7일, 지나 주둔군은 루거우차오(盧溝橋,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이 사건은 중일 전쟁(中日戰爭)의 발단이 되었다. 사건 발발 직후 일본은 조선군의 제20사단과 관동군의 독립혼성 제1·11여단을, 7월 27일에는 혼슈(本州)의 제5·6·10사단을 지나 주둔군에 전속시켰다. 1937년 8월 31일, 지나 주둔군은 제1군으로 개편되었으며, 직할부대는 '지나 주둔혼성여단'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제1군은 제2군과 함께 북지나 방면군(北支那方面軍)에 예속되었다.
편제 (1937년)
1937년 당시 지나 주둔군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 지나 주둔 보병여단 — 베이핑(北平) 주둔, 여단장 가와베 마사카즈(川辺正一) 소장
- 지나 주둔 보병 제1연대 — 베이핑 주둔, 연대장 무다구치 렌야(牟田口廉也) 대좌
- 지나 주둔 보병 제2연대 — 톈진 주둔, 연대장 가야시마 다카시(嘉山喬) 대좌
계보
- 1901년 5월 31일 — 청나라 주둔군으로 창설
- 1912년 4월 26일 — '지나 주둔군'으로 개명
- 1937년 8월 31일 — 제1군으로 개편
이 부대는 이후 일본 제국 육군의 중국 방면 작전 부대의 전신이 되었으며, 중일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부대로 역사적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