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앵 뒤프레(Julien Dupré, 1851년 3월 18일 ~ 1910년 4월)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화가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농촌 생활과 농민의 노동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겼으며, 장프랑수아 밀레와 쥘 브르통의 뒤를 이은 사실주의 농촌 화풍의 대표적 계승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생애
쥘리앵 뒤프레는 1851년 3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보석상인 장 뒤프레(Jean Dupré)와 폴린 부이예(Pauline Bouillié)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업을 잇기를 기대받아 처음에는 레이스 판매점에서 일했으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파리 포위전으로 인해 부모의 가게가 문을 닫게 되면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국립장식미술학교(Écol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야간 강좌를 수강한 후,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이지도르 필스(Isidore Pils)와 앙리 레망(Henri Lehmann)에게 사사했다.
1870년대 중반 피카르디(Picardy) 지방을 여행하면서 농촌 풍속화가 데지레 프랑수아 로제(Désiré François Laugée)의 제자가 되었고, 1876년 로제의 딸 마리 엘레오노르 프랑수아즈(Marie Eléonore Françoise)와 결혼했다. 같은 해 파리 살롱(Paris Salon)에 첫 작품 《피카르디의 수확》(La Moisson en Picardie)을 출품하며 화가로서 공식 데뷔하였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고, 1892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를 수훈받았다. 1910년 4월 파리에서 사망하였으며, 페르 라셰즈 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에 안장되었다.
작품 세계
뒤프레는 평생 동안 프랑스 농민의 삶과 노동을 주제로 삼았다. 건초를 거두는 여성, 소를 돌보는 목동, 밭에서 일하는 농부 등이 그의 주요 소재였으며, 노르망디(Normandy)와 브르타뉴(Brittany) 지역의 농촌 풍경을 자주 묘사했다. 그의 화풍은 엄격한 아카데미즘 훈련에 바탕을 두면서도 인상파의 자유로운 붓놀림과 밝은 색채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 특징으로, 등장인물들은 역동적인 자세와 영웅적 기개를 지닌 것으로 표현된다. 미술사학자 홀리스터 스터지스(Hollister Sturges)는 뒤프레를 "형태의 이상화를 통해 농민 여성들에게 영웅적 아우라를 부여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주요 작품
대표작으로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 소장한 《흰 소》(La vache blanche, 1890년경)와 《알팔파를 베는 사람들》(Les faucheurs du luzerne, 1880년)이 있다. 그 외에도 《건초 수확》(La Récolte des Foins, 1881), 《이삭 줍는 사람들》(Glaneuses, 1880), 《목장에서》(Au Pâturage, 1882)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외에도 미국과 대만 등 여러 국가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향과 평가
뒤프레는 생전에 프랑스와 해외에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으며, 특히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많은 작품이 미국의 미술관과 수집가들에게 소장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1882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뒤프레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루시 스카버러 코넌트(Lucy Scarborough Conant) 등 후배 화가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한동안 학계의 주목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으나, 2008년 하워드 L. 레스(Howard L. Rehs)와 재닛 휘트모어(Janet Whitmore) 교수에 의해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 연구가 진행되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