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드 폴리냐크(Jules de Polignac)는 본명이 쥘 오귀스트 아르망 마리 드 폴리냐크(Jules Auguste Armand Marie de Polignac)로, 1780년 5월 14일 프랑스 파리 또는 베르사유에서 태어나 1847년 3월 30일 생제르맹앙레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정치인이다. 그는 프랑스 왕정 복고 시기 마지막 총리(내각 수반)를 역임하였다.
폴리냐크 가문은 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으로, 그의 어머니 가브리엘 드 폴라스트롱(Gabrielle de Polastron)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절친한 친구이자 측근이었다. 쥘 드 폴리냐크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발발 당시 가족과 함께 국외로 망명하여 스위스, 로마, 베네치아, 빈 등지를 거쳐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이후 나폴레옹 시기에는 러시아 군대에서 복무하기도 하였다.
1814년 부르봉 왕정 복고 이후 프랑스로 귀국하여 귀족원(상원) 의원이 되었고, 1817년에는 폴리냐크 백작, 1820년에는 교황령으로부터 폴리냐크 공(prince) 작위를 받았다. 1829년 8월, 샤를 10세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강경한 왕당파(울트라-로얄리스트)로서 극도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으며, 의회와 여론을 무시하고 국왕 중심의 강력한 통치를 추구하였다.
1830년 7월, 샤를 10세와 함께 7월 칙령(Ordonnances de Juillet)을 발표하여 의회 해산, 언론 탄압, 선거법 개정 등을 강행하였다. 이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7월 혁명(1830년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켰다.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퇴위하고 부르봉 왕조의 장자 계통이 무너지면서, 폴리냐크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836년 사면되어 석방되었으며, 생제르맹앙레에서 여생을 보내다 1847년 사망하였다. 사망 직전인 1847년 3월에 3대 폴리냐크 공작 작위를 받았으나, 그로부터 약 한 달 만에 사망하였다.
역사적 평가에 있어 그는 극단적인 왕당파 노선과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7월 혁명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