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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성

중서성(中書省)은 동아시아의 전근대 왕조에서 운영된 중앙 관청이다. 그 기원은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시대에 환관에게 상서(尚書)의 업무를 맡게 한 '중서알자(中書謁者)'라는 관직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성제(成帝) 때 폐지되었다가, 삼국 시대 위(魏)의 문제(文帝)가 중서성을 처음 설치하여 조명(詔命)의 기초와 정치적 중요 사항의 결정에 참여하게 하였다.

중국 수(隋) · 당(唐) 왕조에서는 중서성 · 문하성(門下省) · 상서성(尙書省)의 삼성(三省) 체제가 정비되었다. 이 체제에서 중서성은 황제의 조칙(詔勅)을 입안 · 기초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문하성은 이를 심의하였으며, 상서성은 실제 집행을 맡았다. 당대에는 중서령(中書令)이 정식 재상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당 후기에는 중서령이 명예직화되고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가 실질적인 재상직으로 기능하였다.

북송(北宋)에서는 중서성의 장관이 실무 관직보다는 공신에 대한 추증직으로 남았고, 원(元) 왕조에서는 중서성이 군정을 담당한 추밀원(樞密院)과 감찰 · 사법 기관인 어사대(御史臺)를 제외한 모든 정치 권력을 집중한 강력한 기구로 변모하였다. 원대에는 각 지방에 행중서성(行中書省)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중국의 지방 행정 구역인 '성(省)'의 기원이 되었다. 명(明) 왕조의 홍무제(洪武帝)는 1380년 호유용의 옥(胡惟庸의 獄)을 계기로 중서성을 폐지하고 승상(丞相)을 비롯한 일체의 재상직을 없앰으로써 황제 독재 체제를 확립하였다.

한국 고려(高麗) 왕조에서는 982년(성종 1)에 당의 삼성제를 도입하여 내사성(內史省) · 문하성 · 상서성을 설치하였다. 이후 1061년(문종 15)에 내사성을 중서성으로 개칭하였으나, 실제로는 중서성과 문하성이 단일 기구로 통합되어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을 이루었다. 중서문하성은 고려 최고의 정무 기관으로 기능하였으며, 그 장관인 문하시중(門下侍中)이 수상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그 기능이 이양되었고, 충렬왕 때 첨의부(僉議府)로 개편되었다가 공민왕 때 일시 복구되기도 하였으나, 조선 건국 직후 의정부(議政府) 체제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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