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장(中郞將)은 중국 고대의 무관직에서 비롯된 관직명으로,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에 정5품 무관직으로 채택되었다.
중국에서의 기원과 변천
중랑장은 진(秦)나라에서 동한(東漢) 중기에 걸쳐 주로 황궁의 궁문 수비와 황실 호위대를 통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직속 상관은 광록훈(光祿勳)이었다. 전한(前漢) 시기에는 좌중랑장(左中郎將), 우중랑장(右中郎將), 오관중랑장(五官中郎將)의 셋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이후 우림중랑장(羽林中郎將)과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들 중랑장의 품질(品秩)은 비이천석(比二千石)으로, 장군이나 교위보다는 낮은 등급이었다.
동한 말기와 삼국(三國) 및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이르러 중랑장의 명칭은 더욱 다양해졌고, 각 할거 세력의 수장들이 휘하 무관들에게 널리 하사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건위중랑장(建威中郎將) 주유(周瑜), 군사중랑장(軍師中郎將) 제갈량(諸葛亮) 등이 있다. 당(唐) 왕조에서는 중랑장이 각 부(府)와 위(衛)의 금군과 위사를 통솔하는 직책으로 부활하였으며, 품계는 정4품에서 종4품 정도였다. 송(宋) 왕조 이후로는 점차 허직(虛職)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중랑장
고려 시대에 중랑장은 2군 6위(二軍六衛) 체제에서 장군의 아래, 낭장(郎將)의 위에 위치하는 정5품 무관직이었다. 문종 30년(1076년) 개정된 전시과(田柴科)에 따르면 제6과에 속하여 전(田) 70결과 시(柴) 27결을 지급받았다. 편제상으로는 2군 6위에 각 영(領)마다 2인의 중랑장이 배치되어 총 90인, 여기에 도부외(都府外) 1인, 충용위(忠勇衛) 12인을 합하여 모두 103인이 편제되어 있었다. 각 군과 위에는 상장군 1인과 대장군 1인이 있었고, 그 아래 각 장군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의 5품 무관직으로 중랑장이 존재하였으나, 세종 때까지 유지되다가 문종 이후로는 기록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편, 한국의 여러 성씨 문중에서 중랑장 관직을 지낸 인물을 시조나 파조로 하는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남양 홍씨 당홍계의 중랑장파, 전주 최씨의 중랑장공파, 진주 하씨의 시조 하공진(河拱辰) 등이 중랑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