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 캄바라게 니에레레 (영어: Julius Kambarage Nyerere, 1922년 4월 13일 ~ 1999년 10월 14일)는 탄자니아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이다. 그는 1961년 탕가니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초대 총리를 지냈으며, 1962년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사회주의(우자마) 사상을 바탕으로 국가 통합과 자립 경제를 추구했으며, 범아프리카주의와 비동맹 운동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음왈리무(Mwalimu)’ 즉 ‘선생님’이라는 존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과 교육
니에레레는 1922년 4월 13일 탕가니카 북부 무시마(Butiama, Musoma District)에서 자나키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마친 후, 우간다의 마케레레 대학교(Makerere University)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교사로 일했으며, 이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서구 교육을 받은 몇 안 되는 아프리카 독립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교육 배경은 이후 그의 정치 사상과 국가 건설 비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치 경력과 독립
1952년 고국으로 돌아온 니에레레는 정치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1954년 그는 탕가니카 아프리카 민족 연합(Tanganyika African National Union, TANU)을 창설하고 당의 의장이 되었다. TANU는 탕가니카의 독립을 위한 주요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니에레레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영국 식민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했다. 그는 유엔 신탁 통치 위원회에 탕가니카의 독립을 요구하는 강력한 연설을 통해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의 노력으로 탕가니카는 1961년 12월 9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며, 니에레레는 초대 총리에 취임했다. 1962년 탕가니카가 공화국으로 전환되면서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재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니에레레는 ‘우자마(Ujamaa)’라는 아프리카 사회주의 사상을 주창하며 국가 건설에 나섰다. 우자마는 스와힐리어로 ‘가족애’ 또는 ‘공동체’를 의미하며, 서구 자본주의와 동구 공산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아프리카 전통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립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1967년 아루샤 선언(Arusha Declaration)을 통해 우자마의 원칙을 천명하고, 주요 산업의 국유화, 농업 공동체 육성(‘우자마 마을’), 공무원의 영리 활동 금지 등을 추진했다.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운동의 주요 리더로서 국제사회에서 탄자니아의 위상을 높였으며, 특히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고 아프리카 해방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1964년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통합하여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자마 정책은 생산성 저하와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 퇴임 후와 사망
니에레레는 1985년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평화적인 정권 이양의 선례를 남겼다. 퇴임 후에도 그는 아프리카의 분쟁 해결과 국제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계속했으며, 남아프리카 해방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1999년 10월 14일 런던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산
니에레레는 탄자니아를 단일한 국가로 통합하고 독립을 이끈 ‘국부’로 평가받는다. 그의 우자마 사상은 빈부 격차 해소와 자립 경제 달성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로는 경제적 침체와 빈곤 심화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탄자니아 내의 다양한 부족 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 그리고 아프리카의 존엄성과 자립을 상징하는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유엔(UN)은 그의 공로를 기려 ‘니에레레 상(Nyerere Award)’을 제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