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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

죽간(竹簡)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고대 중국을 중심으로 사용된 기록 매체이다. 대나무를 일정한 길이와 폭으로 쪼개어 그 위에 글자를 쓰고, 여러 조각을 끈으로 엮어 책의 형태로 만든 것을 가리킨다. 한자 '죽(竹)'은 대나무를, '간(簡)'은 대쪽을 의미한다.

죽간은 중국 주대(周代)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진대(秦代)와 한대(漢代)에 성행하였으며, 육조대(六朝代)까지도 사용되었다. 대나무 대신 나무 조각을 사용한 것은 목독(木牘)이라 하여 구분하며, 죽간과 목독을 통틀어 간독(簡牘)이라고 부른다. 죽간으로 만든 편지는 죽찰(竹札)이라고도 한다.

죽간의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나무통을 낱낱이 쪼갠 것을 간(簡)이라 하는데, 사용 전에 대나무의 유즙을 빼고 푸른 표피(청피)를 벗겨내는 살청(殺靑) 또는 한간(汗簡)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글씨를 쓰기 쉽게 하고 충해를 방지하여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글씨는 칠(漆)이나 먹(墨)을 사용하여 썼으며, 교정이 필요할 때는 칼을 사용하였다.

죽간의 길이는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달랐다. 가장 긴 것은 2척 4촌(약 60cm)으로 경전·법률·역사서적에 쓰였고, 다음은 1척 2촌으로 《효경》에, 8촌으로 전기서(傳記書)와 자서(子書)에 사용되었다. 매 간(簡)은 대개 1행으로 적었으며 8~10자 정도를 쓸 수 있었다. 개개의 단찰(單札)을 엮는 방식으로는 댓발을 엮듯이 위아래 두 곳을 끈으로 묶는 횡련식(橫連式)과, 너비가 넓은 간독의 위쪽에 구멍을 뚫어 겹쳐서 엮는 중적식(重積式)이 있었다.

죽간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죽이나 비단과 더불어 사용되었으나, 무게가 무거워 이동과 휴대가 불편한 단점이 있었다. 2세기 초엽 종이가 발명·보급된 이후 점차 사용이 줄어들었다.

죽간과 관련된 주요 고사로는 공자가 《역경》을 너무 많이 읽어 죽간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 있으며, '수명죽백(垂名竹帛)'이나 '명수죽백(名垂竹帛)'과 같은 성어는 죽간과 비단에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김을 비유한다.

죽간의 실물은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지의 고분과 유적에서 발견되어 학계의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 태안 마도 해역에서 고려시대 죽간이 발견된 바 있으며, 중국에서는 2011년 강서성(江西省) 해혼후묘(海昏侯墓)에서 5,200여 매의 한나라 시대 간독이 출토되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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