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유(朱之瑜, 1600년 ~ 1682년)는 명나라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자는 노서(魯嶼) 또는 초서(楚嶼), 호는 순수(舜水)이며, 호를 따서 주순수(朱舜水)로도 통칭된다. 명나라가 멸망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인물로, 일본 유학 및 교육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생애
주지유는 1600년 11월 17일 명나라 절강성 여요(余姚)에서 태어났다. 1644년 북경이 청군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는 반청(反淸) 활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중국 화남 지방과 안남국(安南國, 오늘날의 베트남), 일본 등지를 오가며 무역 활동을 통해 반청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였다.
1657년 안남국에서 벼슬을 권유받았으나 안남국왕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 태도를 보여 본국으로 추방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명(南明)의 노왕(魯王)을 지지하였으며, 한때 정성공(鄭成功)과 협력하기도 하였다.
1659년 남경 공략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공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같은 해 정성공의 사신 자격으로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때 일본 막부는 네덜란드인과 중국인의 체류 기간을 기본적으로 40년으로 한정하고 있었으나, 야나가와 번(柳川藩)의 학자 안도 세이안(安東省菴)의 도움으로 영주권을 획득하였다.
1665년에는 미토번(水戸藩) 번주인 도쿠가와 미쓰쿠니(徳川光圀)의 초청을 받아 에도에서 유학을 강의하였다. 미토의 대성전을 건립할 때 성묘(聖廟), 명륜당(明倫堂), 존경각(尊經閣) 등의 설계를 맡기도 하였다.
영향과 유산
주지유의 유학은 일본 유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도쿠가와 미쓰쿠니를 중심으로 한 미토학(水戸學)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682년 5월 24일 일본 에도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무덤은 현재 일본 이바라키현 미토시에 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