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 1692년 4월 8일 ~ 1770년 2월 26일)는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후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이다.
타르티니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피라노(현재 슬로베니아의 피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피렌체 출신의 귀족으로,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709년, 17세의 나이로 북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했으나, 곧 음악과 펜싱에 몰두하게 되었으며 특히 펜싱 명수로서 명성을 얻었다.
1713년, 21세 때 엘리자베타 프레마초레와 결혼했으나, 이 결혼이 프레마초레의 보호자였던 유력한 추기경의 노여움을 사면서 체포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타르티니는 파도바를 떠나 각지를 방랑하다가 중부 이탈리아의 아시시에 정착하여 바이올린과 작곡 공부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그는 바이올린 주법을 연구했고, 대표작인 《악마의 트릴》 소나타를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1715년에는 허락을 받고 파도바로 돌아와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점차 명성을 쌓아갔다.
1721년 4월에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 수석 바이올린 주자로 임명되어 성당 합주단과 합창단을 지도했다. 1728년에는 파도바에 바이올린 학교를 설립하여 바이올리니스트의 조직적인 양성에 나섰다. 이후 이탈리아 각지를 연주 여행하며 활동했으며, 1755년에는 파리와 런던을 방문하여 큰 환영을 받았다. 타르티니는 1770년 2월 26일, 중풍으로 77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작곡가로서 타르티니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바이올린 음악의 대가로 평가된다.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형식적·양식적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보다는, 우아한 멜로디와 간결한 화성에 독특하고 유화한 분위기를 담아 신선한 매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자로서는 음악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화성론》 등의 저서를 출판하여 후세의 음악 이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인 《악마의 트릴》 소나타는 1749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타르티니가 아시시에서 바이올린 주법 연구에 몰두하던 중 꿈속에서 악마가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작곡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곡의 이름은 마지막 3악장에서 연주하기 매우 까다로운 트릴 주법이 등장하는 데서 유래했으며, 꿈에서 악마에게 배웠다는 이야기를 작곡가 자신이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르티니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100곡이 넘는 바이올린 작품을 남긴 다작의 작곡가로, 근대 바이올린 활 주법의 확립과 장식음 및 화성 원칙의 정립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