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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시리

주세페 시리(Giuseppe Siri, 1906년 5월 20일 ~ 198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로, 제노바 대교구장과 추기경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20세기 가톨릭교회에서 보수적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생애와 초기 경력

시리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항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7년부터 제노바의 대신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이후 로마의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1928년 9월 22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듬해까지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로마에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제노바로 돌아온 뒤에는 대신학교에서 교리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주교와 대교구장

1944년 3월,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제노바 대교구의 보좌주교와 리비아스 명의주교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5월 주교 서품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시리는 제노바를 포위한 나치 독일군과 교섭하는 한편,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제노바 대교구장 보에토 추기경이 선종하자 그 뒤를 이어 대교구장직을 계승하였다.

추기경과 공의회 활동

1953년 1월 12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으며, 당시 추기경단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이었다. 급식소에서 이탈리아 수프인 미네스트로네를 나누어주는 구호 활동을 한 것에서 비롯되어 '미네스트로네 추기경'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시리는 강경한 보수적 견해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전통적 입장을 견지한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다만 그는 스스로를 특정 모임에 속한 인물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주교 단체성과 교회의 혁신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이탈리아 주교회의 초대 의장을 지냈다.

교황 선거 관련 활동

시리는 생애 동안 네 차례 콘클라베(교황 선거)에 참여하였다. 1958년, 1963년, 1978년 8월, 1978년 10월에 열린 콘클라베에서 강력한 교황 후보(papabile)로 거론되었으며, 특히 보수 성향의 추기경들이 그를 지지하였다. 1978년 8월 콘클라베에서는 첫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얻은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알비노 루치아니(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되었다. 요한 바오로 1세의 갑작스러운 선종 이후 열린 1978년 10월 콘클라베에서는 보수파의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절충안으로 카롤 보이티와(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되었다.

말년과 평가

시리는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으나, 르페브르의 교회 분열 시도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로마 교회와 결별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만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일대기에 따르면, 르페브르가 이탈리아에서 유의미한 지지 세력을 얻지 못한 것은 시리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시리는 41년간 제노바 대교구장으로 봉직한 후 1987년 7월 퇴임하였으며, 1989년 5월 2일 제노바에서 82세의 나이로 선종하여 제노바 대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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