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사(朱蒙祠), 또는 동명왕신사(東明王神祠)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주몽)을 모셨던 사당이다. 고구려 시조에 대한 제사 의례가 행해지던 곳으로, 문헌 기록상 고구려 시대에 존재했으며 고려 시대까지 명맥이 유지되었으나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적 기록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 4년(646년) 음력 5월조에 주몽사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고구려의 서쪽 경계를 방어하던 요동성(遼東城, 현재 중국 랴오닝성 지역)이 당나라 태종의 침공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요동성 안에는 주몽, 곧 동명성왕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으며, 그 사당 안에는 쇠사슬로 만든 갑옷(쇄갑, 鎖甲)과 날카로운 창(섬모, 銛矛)이 신물로 보관되어 있었다. 요동 사람들은 이 갑옷과 창이 4세기경 전연(前燕) 시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믿었다.
성의 위급함이 계속되자, 한 아름다운 처녀를 단장시켜 부신(婦神)으로 삼았고, 무당이 "주몽이 기뻐하니 성이 반드시 온전하리라"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주몽사가 나라에 환난이 있을 때 국조인 동명왕에게 무당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종교적 기능과 성격
주몽사에서 모셔진 동명성왕은 전쟁 시 기도의 대상이 되는 수호신적 성격을 지녔다. 고구려 사회에서 동명성왕은 사슬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을 든 전사의 모습으로 여겨졌으며, 국가의 신성한 수호자이자 시조신으로 숭배되었다. 사당의 무속 의례는 장병 결속의 기능을 하였다는 해석이 있다.
추가 기록
주몽사에 대한 언급은 송나라 학자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나타난다. 고려 왕조가 한반도에 존재했던 시기의 기록인 점을 고려할 때, 한반도 내에도 최소 한 곳 이상의 동명왕 사당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위키백과에서는 이 사당이 고구려의 시조묘(始祖廟)와 동일한 장소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소재지
기록상 주몽사는 최소 두 곳이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하나는 랴오둥반도의 요동성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에 있었다. 현재는 모두 소멸되어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참고 자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도경(高麗圖經)』
- 『한국민속학개설』(장주근 외, 학연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