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周崎, ? ~ 322)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인물이다. 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형주 소릉군(邵陵郡) 출신이다. 《진서(晉書)》 권89 「충의전(忠義傳)」에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주기는 상주(湘州)에서 종사(從事) 관직을 지내고 있었다. 동진 원제(元帝) 시기인 영창(永昌) 원년(322년) 정월, 권신 왕돈(王敦)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돈의 부하인 남만교위(南蠻校尉) 위예(魏乂)가 2만의 중갑병을 이끌고 임상(臨湘)을 포위하였다. 이에 상주자사(湘州刺史)이자 초왕(譙王)인 사마승(司馬承)은 주기와 주해(周해)에게 의도내사(宜都內史) 주급(周級)에게 원군을 요청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성을 빠져나가기 전에 순찰 중이던 적군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혔다.
위예는 주기에게 칼을 들이대며, 성 안을 향해 "대장군(왕돈)이 이미 유외(劉隗)와 대연(戴淵)을 격파하였고, 감탁(甘卓)은 양양(襄陽)에서 움직이지 않아 강동(江東) 3군이 모두 평온하니 원군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외쳐 성 안의 사기를 꺾으라고 강요하였다. 주기는 이를 승낙하는 척하고 성 아래에 이르러 오히려 큰 소리로 "왕돈군이 우호(于湖)에서 관군에게 패하였고, 안남장군(감탁)께서 무창(武昌)에서 승리를 거두셨다. 가까운 시일 내에 대군이 구원하러 올 것이니, 성을 굳게 수비하라"고 외쳤다. 이에 위예는 분노하여 주기를 여러 차례 찔러 죽였다.
주기는 적에게 붙잡혔음에도 거짓으로 협력하는 척하다가 성 안에 진실된 소식을 전하고 순절한 인물로, 《진서》에서 충의(忠義)한 인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