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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양왕

주 양왕(周 襄王)은 중국 주(周)나라의 제18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652년부터 기원전 619년까지이다. 성은 희(姬), 이름은 정(鄭)이며, 주 혜왕(惠王)의 아들이다. 동주(東周)의 제6대 군주에 해당한다.

생애

아버지 혜왕이 전처 사후에 후처인 혜후(惠后)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자대(子帶, 숙대)를 총애했기 때문에, 양왕은 왕위 계승이 이복동생에게 넘어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혜왕 25년(기원전 652년)에 혜왕이 사망하자, 양왕은 혜왕의 상(喪)과 동시에 당시의 패자(覇者)였던 제(齊)의 환공(桓公)에게 사자를 보내 지원을 얻어 즉위하였다.

양왕 3년(기원전 649년), 이복동생 숙대가 융(戎)·적(狄)과 함께 양왕을 공격하였다. 양왕은 숙대를 주살하려 했으나 숙대는 제로 도망쳤다. 제의 환공은 관중(管仲)을 통해 주와 융을 화해시켰고, 습붕(隰朋)을 통해 진(晉)과 융을 화해시켰다. 양왕 12년(기원전 640년)에 숙대는 주로 복귀하였다.

양왕 13년(기원전 639년), 정(鄭)나라가 활(滑)나라를 정벌하자 양왕은 유손(游孫)·백복(伯服)을 보내 활나라의 땅을 헌상하도록 요구했으나, 정나라는 두 사람을 잡아두었다. 양왕은 분개하여 정나라를 정벌하려 했고, 대부 부신(富辰)이 만류했으나 듣지 않고 다음 해(기원전 637년)에 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정벌하였다. 이때 양왕은 적(狄)인의 딸(적후)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양왕 16년(기원전 636년), 양왕이 적후에게 싫증을 내자 적후는 분개하여 혜후의 아들 숙대를 세울 계획을 세웠다. 혜후와 적후·숙대는 내응하여 융·적을 맞아들이고 양왕을 추방했으며, 숙대를 천자에 즉위시켰다. 양왕은 정나라로 도망쳤고, 정나라는 왕을 사(汜) 땅에 머물게 하였다.

양왕 17년(기원전 635년), 양왕은 진(晉)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진의 문공(文公)이 융·적을 추방하고 숙대를 주살하여, 양왕은 복위할 수 있었다. 양왕은 진의 문공에게 방백(方伯)의 지위와 하내(河內)의 땅을 주었다.

양왕 20년(기원전 632년), 성복(城濮) 전투에서 진 문공이 초(楚)나라의 성득신(成得臣)을 물리쳤고, 이후 양왕은 진 문공의 요구에 따라 하양(河陽)에서 회맹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양왕 32년(기원전 620년), 양왕이 사망하고 아들 임신(壬臣, 경왕)이 즉위하였다.

평가

주 양왕은 춘추시대에 왕실의 권위가 쇠퇴하던 시기에 재위한 군주로, 제 환공과 진 문공 등 당대의 패자들에게 의존하여 왕위를 유지한 인물이다. 특히 진 문공의 지원으로 복위한 이후 진나라에 방백의 지위와 영토를 하사한 사건은, 주 왕실의 권위가 제후국에 실질적으로 종속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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