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풍익(左馮翊)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관직이자 행정 구역 명칭이다. 수도 장안(長安) 주변 지역을 관할하는 특수한 지방 장관직인 삼보(三輔) 중 하나로, 경조윤(京兆尹), 우부풍(右扶風)과 함께 전한의 수도권을 담당했다.
기원전 104년(태초 원년), 전한 무제(武帝)가 종전의 좌내사(左內史)를 고쳐 처음으로 좌풍익을 설치하였다. 관할 영역은 대략 현대 중국의 산시성(陝西省) 셴양시(咸陽市) 동부, 옌안시(延安市) 남부, 웨이난시(渭南市)의 웨이허(渭河) 이북 지역, 그리고 퉁촨시(銅川市) 일대에 걸쳐 있었다. 원시(元始)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23만 5101호, 91만 7822명이 거주했으며 24개 현을 관할했다.
이후 관할 영역이 군(郡) 단위인 풍익군(馮翊郡)으로 바뀌면서 관직도 태수(太守), 즉 풍익태수(馮翊太守)로 변경되었다. 명칭은 《시경(詩經)》 권아편(卷阿篇)의 "유빙유익(有馮有翊)"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한편 '馮'은 '도울 빙(憑)'의 뜻으로 쓰였으므로 본디 '좌빙익'으로 읽어야 하나, 한국에서는 '좌풍익'으로 읽는 관습이 정착되었다.
좌풍익은 전한 멸망 후에도 후한(後漢), 위진(魏晉), 북위(北魏), 수(隋), 당(唐), 송(宋)을 거치며 풍익군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당대에는 동주(同州)로 개명되었고, 송대에도 동주(同州)의 군명(郡名)으로 풍익군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