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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랑

좌랑(佐郞)은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존재한 육조(六曹) 소속의 정6품 관직이다. 한자 표기는 '도울 좌(佐)'와 '젊은 관리 랑(郞)'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급자인 정5품 정랑(正郞)을 보좌하여 각 조(曹)의 속사(屬司) 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기원과 변천

좌랑의 기원은 고려 시대 상서(尙書) 6부에 두었던 원외랑(員外郞)에서 찾을 수 있다. 1275년(충렬왕 1) 상서 6부가 4사(四司)로 개편되면서 고공사와 도관의 원외랑이 좌랑으로 개칭된 것이 최초의 사례이다. 이후 고려 말기 관제 변화에 따라 원외랑과 좌랑, 산랑(散郎) 사이에서 명칭이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1389년(공양왕 1) 6사가 육조로 개편되면서 좌랑이라는 명칭이 유지되어 조선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관제에서는 각 조와 도관에 좌랑을 두었으며, 1405년(태종 5) 육조가 정2품 아문으로 승격하면서 각 조에 좌랑 3명을 두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다만 병조와 형조에는 1명씩 더 두어 4명이 배치되었다.

직무와 위상

좌랑은 정랑과 함께 각 조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낭관(郎官)으로서, 이들을 통틀어 낭청(郎廳) 또는 조랑(曹郎)이라 불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조의 문선사·고훈사·고공사, 호조의 판적사·회계사·경비사, 예조의 계제사·전향사·전객사 등의 속사에서 호구·조세·인사·의례·군사 등 각 분야의 실무를 책임졌다.

특히 이조와 병조의 정랑·좌랑은 인사 행정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전랑(銓郎)이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당상관들의 인사 전형 회의에 배석하여 임용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는 일을 맡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낭관 집단이 정치적 세력으로서 활동하며 권한이 커졌으며, 이조 전랑을 둘러싼 다툼은 1575년 동서분당(東西分黨)의 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정랑직에 결원이 생기면 좌랑이 승진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1431년(세종 13) 이후에는 자질이 뛰어난 자에 한하여 당상관의 추천을 받아야 하였고, 1436년 이후에는 정랑으로의 직접 승진이 금지되었다.

쇠퇴와 폐지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가 정치·행정을 주도하게 되면서 육조 낭관의 위상이 약화되었다. 1789년(정조 13)에는 좌랑이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이후 『속대전』과 『대전통편』 단계에서 관련 규정이 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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