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John Wesley, 1703년 6월 28일 ~ 1791년 3월 2일)는 영국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성공회 사제로, 감리교(Methodism) 운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8세기 영국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핵심 인물로서,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생애
존 웨슬리는 잉글랜드 링컨셔 주 엡워스(Epworth)에서 성공회 사제인 새뮤얼 웨슬리와 수재너 웨슬리의 열아홉 자녀 중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인 1709년 사제관 화재에서 간신히 구조되었으며,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신앙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런던의 차터하우스 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하였고, 1725년 부제로, 1728년 사제로 서품받았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 존 웨슬리는 동생 찰스 웨슬리가 시작한 신성회(Holy Club)에 참여하여 지도자가 되었다. 이 모임은 규칙적인 기도, 성경 연구, 금식, 감옥 방문 등의 경건 생활을 실천하였으며, 이들의 규칙적인 생활 방식 때문에 주변에서 "메소디스트(Methodist)"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것이 감리교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1735년, 웨슬리는 동생 찰스와 함께 미국 조지아 식민지로 선교를 떠났으나, 보수적인 목회 방식과 현지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약 2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모라비아 교도들과 교류하며 신앙적 영향을 받았다.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모임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듣는 중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회심을 경험하였다. 이 사건은 웨슬리의 신앙과 사역에 전환점이 되었다.
사역과 신학
회심 이후 웨슬리는 영국 전역과 아일랜드를 다니며 야외 설교와 전도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 평신도 설교자들을 세워 각 지역에 속회(소모임)를 조직하고 신자들을 양육하였다. 그의 사역은 교도소 개혁, 노예 해방 운동 등 당시 사회 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학적으로 웨슬리는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에 반대하고 아르미니우스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성화(聖化)의 개념을 강조하였으며, 은총의 수단(성례전, 기도, 성경 읽기 등)을 통해 신자들이 변화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신학은 이후 웨슬리주의(Wesleyan theology)로 체계화되어 감리교 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영향과 유산
웨슬리는 평생 영국 성공회의 성직을 유지하면서 감리교 운동을 성공회 내부의 개혁 운동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미국 감리교회에 감독을 파송하면서 미국에서는 분리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웨슬리 사후 영국 감리교도 성공회로부터 독립하여 별도의 교단을 형성하였다. 감리교 운동은 이후 구세군, 성결 운동, 오순절 운동 등 여러 기독교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런던에서 88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그의 저술과 설교는 오늘날까지 기독교 신학과 실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