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앨비언 앤드루(John Albion Andrew, 1818년 5월 31일 ~ 1867년 10월 30일)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860년 매사추세츠주 제25대 주지사로 선출되어 1861년부터 1866년까지 재임했으며, 미국 남북 전쟁(1861~1865) 동안 연방을 위한 주의 공헌을 지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 육군 최초의 흑인 부대 중 하나인 제54매사추세츠 의용보병연대의 창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앤드루는 메인주 윈덤(당시 매사추세츠주 소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를 1837년에 졸업한 뒤 보스턴으로 이주하여 법학을 공부했고, 1840년 매사추세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법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앤드루는 초기부터 노예제 폐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었다. 그는 휘그당(Whig Party) 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이후 자유토지당(Free Soil Party)과 공화당(Republican Party)에 속했다. 1850년 연방 도주노예법(Fugitive Slave Act) 통과 이후 도주 노예의 법적 방어에 관여했고, 1854년에는 보스턴에서 노예 신분 탈출을 도운 사람들을 변호하기도 했다. 1859년 하퍼스페리 습격 사건으로 체포된 존 브라운(John Brown)에게도 법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이 활동은 그를 주의 관심 인물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860년 앤드루는 매사추세츠주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취임 직후 그는 주 민병대를 정비하고 해안 방어 시설을 개선하는 등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노예제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냈다. 1863년에는 흑인 병사들의 입대를 촉진하여 제54매사추세츠 의용보병연대와 제55연대의 창설을 이끌었다. 이 부대들은 매사추세츠뿐만 아니라 오하이오,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여러 주에서 모집된 흑인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주내 사안으로는 1865년 매사추세츠 주경찰(Massachusetts State Police) 설립 법안에 서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에서 주 차원의 경찰력으로는 최초의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후색 터널(Hoosac Tunnel) 건설 사업의 주정부 인수를 관할하기도 했다.
남북 전쟁이 끝나갈 무렵 앤드루의 정치적 입장은 점차 온건해졌으며, 1865년에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재건(Reconstruction)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여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찰스 섬너(Charles Sumner)와의 관계에서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앤드루는 1866년 주지사직을 마친 뒤 법률가로 복귀했으나, 1867년 10월 30일 보스턴 자택에서 뇌졸중(apoplexy)으로 사망했다. 향년 49세였다. 그의 유해는 케임브리지의 마운트 오번 묘지에 처음 안장되었다가 1875년 힝엄(Hingham)의 올드십 묘지로 이장되었다.
그의 이름을 기리는 기념물로는 사우스 보스턴의 앤드루 광장(Andrew Square), 보스턴 자메이카 플레인의 존 A. 앤드루 거리,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대학의 존 앤드루 병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