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던스터블(John Dunstaple 또는 Dunstable, 약 1390년 ~ 1453년 12월 24일)은 영국의 작곡가로, 중세 말기에서 초기 르네상스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다성음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생애
존 던스터블의 생애에 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출생 연도는 약 1390년경으로 추정되며, 이는 그의 가장 오래된 현존 작품이 1410년에서 1420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에 근거한다. 출생지는 베드퍼드셔주의 던스터블(Dunstable) 마을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정된 기록은 없다. 그의 성(姓)이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그의 생애에 대한 확인된 사실 중 하나는 1453년 12월 24일(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는 런던의 세인트 스티븐 월브룩 교회에 있던 비문을 통해 알려졌으나, 해당 교회는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는 헨리 4세의 네 번째 아들이자 헨리 5세의 형제인 베드퍼드 공작 존을 섬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베드퍼드 공작은 1423년부터 1429년까지 프랑스의 섭정을 지냈으며, 던스터블은 그와 함께 프랑스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는 1437년 이후 험프리 글로스터 공작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던스터블은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결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수학, 천문학, 점성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천문학 관련 문서를 소장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음악적 업적
던스터블의 음악은 "콩트낭스 앙글레즈"(contenance angloise, '영국적 양식')라는 독자적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는 3도와 6도의 화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보다 부드럽고 풍부한 화성감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 스타일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악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기욤 뒤파이(Guillaume Dufay)와 질 뱅슈와(Gilles Binchois) 등 당대 주요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플랑드르의 음악 이론가 요하네스 팅크토리스(Johannes Tinctoris)는 약 1476년경 던스터블을 이 새로운 음악 양식의 "근원이자 기원"(fons et origo)으로 칭송했다.
작품
그의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약 50여 편에 불과하다. 이는 16세기 영국 종교개혁 시기에 수도원 해산 등으로 많은 음악 원고가 소실되었기 때문이며, 현존하는 작품의 대부분은 이탈리아 북부와 알프스 남부 지역의 대륙 필사본에서 발견되었다.
현존 작품으로는 완전한 미사곡 2편, 연결된 미사 악장 3세트, 개별 미사 악장 14편, 등리듬 모테토 12편, 그리고 마니피카트와 마리아 성가 등 다양한 전례 음악 설정 27편이 있다. 그는 단일 선율을 정선율(cantus firmus)로 사용하는 미사곡 작곡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대표적인 예로 《미사 렉스 세쿨로룸》(Missa Rex seculorum)이 있다.
그가 세속 음악을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프랑스어 롱도인 《뉘스크 므무르》(Puisque m'amour)를 제외하면 그에게 확실히 귀속될 수 있는 세속 가곡은 거의 없다. 한때 그의 작품으로 여겨졌던 유명한 선율 《오 로사 벨라》(O rosa bella)는 현재 존 베딩엄(John Bedingham)의 작품으로 재귀속되었다.
역사적 의의
던스터블은 15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행하는 음악사적 전환기에 대륙 유럽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영향력은 현존 작품 수에 비해 매우 컸던 것으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종종 윌리엄 버드(William Byrd)와 헨리 퍼셀(Henry Purcell)과 함께 영국 초기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