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천(趙漢天, 1942년 12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 노동운동가로, 제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평양 조씨이며, 호는 일지(一地)이다.
출생 및 학력
조한천은 1942년 12월 18일 충청남도 서산군 이원면 포지리(현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포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가족과 함께 인천 지역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이원국민학교, 서산중학교,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경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에서 노사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노동교육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운동 활동
고려대학교 졸업 후 조한천은 섬유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전국섬유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을 역임하여 조합원 교육 및 선전 활동을 담당하였고, 이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본부장을 맡아 노동계의 주요 정책 수립과 입법 활동에 관여하였다. 또한 ROTC중앙회 제8대 부회장을 겸임한 이력이 있다.
정치 활동
조한천은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 같은 당 소속이던 조철구 국회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인천 서구 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제15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국회에 진출하였다. 이후 정당이 새천년민주당으로 개편되면서 당적을 이동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인천 서구·강화군 갑 선거구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의정 활동 기간 동안 새천년민주당 노동특별위원회 위원장,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관을 지냈으며, 2000년 6월부터 2001년 3월까지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하였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될 당시 조한천은 대다수 의원들과 달리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김교흥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08년 자유선진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여, 이를 마지막으로 선거 출마를 중단하였다.
이후 활동
정치 경력 이후 조한천은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인성장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헌정회 이사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자는 김교순이며 슬하에 3남을 두었다.
조한천은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노동 및 중소기업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동한 인물로 평가되며, 이에 대한 정보는 중앙일보 등 언론 보도와 국회 기록, 위키백과 등 다수의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