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지(중국어: 祖沖之, 병음: Zǔ Chōngzhī, 429년~500년)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자는 문원(文遠)이며, 남조의 송나라와 제나라를 섬겼다.
생애
조충지는 429년 유송의 건강(오늘날 중국 난징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천문학과 역법을 관장하는 집안이었으며, 할아버지 조창(祖昌)은 송나라의 대장경(大匠卿)으로 토목건축 사업을 관장했다. 조충지는 어릴 때부터 수학, 천문학, 기계에 관심을 보였으며, 송 효무제에게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아 연구기관인 화림학성(華林學省)에 보내졌다. 461년에는 남서(오늘날 전장)의 자사부 종사가 되었고, 500년에 사망하였다.
수학적 업적
조충지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원주율 계산이다. 그는 480년경 원주율(π)의 값이 3.1415926과 3.1415927 사이에 있음을 계산해냈으며, 이는 세계 최초로 원주율을 소수점 아래 7번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구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약 90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또한 원주율의 근사치로 밀률(密率) 355/113과 약률(約率) 22/7을 제시하였다.
천문학적 업적
조충지는 장기간의 천문 관측과 정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법인 《대명력(大明歷)》을 편찬하였다. 그는 태양년(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365.24281481일로 측정하였는데, 이는 현대 과학으로 측정한 값과 약 50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오차는 60만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동지가 45년마다 1도씩 뒤로 물러난다는 사실을 계산해냈다. 《대명력》은 조충지 사후 10년이 지난 뒤에야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기타 업적
조충지는 아들 조긍지(祖暅之)와 함께 카발리에리의 원리를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보다 약 1100년 앞서 발견하였다. 이는 '조긍지의 원리'라고도 불린다. 또한 천리선(하루에 백 리를 갈 수 있는 배), 목우유마(군량 운반용 수레), 지남차(방향 지시 수레) 등의 기계 제작에도 깊이 연구하였다. 음악과 소설에도 조예가 깊었던 다재다능한 인물로 전해진다. 저서로는 아들과 함께 지은 《철술(綴述)》이 있었으나 송나라 때 유실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영향
조충지의 업적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국제천문학연합(IAU)은 달의 뒷면에 있는 분화구 중 하나를 '조충지'로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