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 1827년 4월 5일 ~ 1912년 2월 10일)는 영국의 외과의사이자 의학자로, 현대 외과 수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본명은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이며, 1897년 남작(Baron Lister of Lyme Regis)으로 승작되었다.
생애 및 배경
리스터는 영국 에식스주 업턴에서 퀘이커 교도 가정의 넷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지프 잭슨 리스터(Joseph Jackson Lister)는 현미경용 무색 대물렌즈(achromatic objective)를 개량한 과학자이자 포도주 상인이었으며,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리스터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852년 우등으로 졸업하였고, 1853년 에든버러로 가서 저명한 외과의사 제임스 사임(James Syme)의 조수로 일했다. 1856년 사임의 딸 아그네스와 결혼하였으며, 아내는 이후 그의 연구에 중요한 협력자가 되었다.
방부 수술법의 개발
1860년 리스터는 글래스고 대학교의 외과 교수로 임명되었고, 1861년 글래스고 왕립병원의 외과의사가 되었다. 당시 수술 후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은 매우 높았으며, 특히 복합 골절 환자의 경우 절반 가량이 사망했다. 리스터는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연구를 접한 후, 상처의 부패가 공기 중의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1865년, 리스터는 석탄산(페놀, carbolic acid)을 이용한 방부 수술법을 개발하였다. 1865년 8월 12일, 11세 소년 제임스 그린리스(James Greenlees)의 복합 골절 치료에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그는 석탄산을 상처 소독과 드레싱에 사용하여 감염을 예방하였고, 1867년 《란셋》(The Lancet)에 "복합 골절 및 농양의 새로운 치료법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방부 수술 체계를 공식적으로 소개하였다.
에든버러 및 런던 시기
1869년 리스터는 에든버러 대학교의 임상 외과 교수로 임명되어 사임의 뒤를 이었다. 1877년에는 런던의 킹스 칼리지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임상 외과 교수로 재직하며 방부 수술법을 전파하였다. 그는 1893년 아내 사망 후 은퇴할 때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주요 업적과 의의
리스터의 방부 수술법은 다음과 같은 핵심 원칙에 기반하였다: 수술 기구, 환자의 피부, 봉합사, 의사의 손을 석탄산 용액으로 소독하고, 상처에 방부 드레싱을 적용하여 공기 중 미생물의 침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수술 후 감염률을 극적으로 감소시켰으며, 외과 수술의 안전성을 혁명적으로 개선하였다. 리스터는 또한 흡수성 봉합사(캣거트)를 개발하고, 배액관을 도입하는 등 외과 기술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수상 및 영예
리스터는 생전에 많은 영예를 받았다. 1883년 준남작(baronet)에 서임되었고, 1897년 남작(baron)으로 승작되었다. 1895년부터 1900년까지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02년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을 수여받았다. 또한 코플리 메달(1902), 왕립 메달(1880) 등을 수상하였다.
사망 및 유산
리스터는 1912년 2월 10일 켄트주 월머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후 햄프스테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리스터린(Listerine) 구강 세정제, 리스테리아(Listeria) 속 세균, 리스터 연구소(Lister Institute) 등이 그의 유산을 기념하고 있다. 리스터의 방부 수술 원칙은 현대 무균 수술(aseptic surgery)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이는 외과 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