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머 퍼타키(George Elmer Pataki, 1945년 6월 24일 ~ )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제53대 뉴욕주지사를 지냈다. 공화당 소속이다.
생애 초기와 교육
퍼타키는 뉴욕주 픽스킬(Peekskill)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헝가리, 이탈리아, 아일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버지 루이스 퍼타키는 우편 집배원이자 의용소방대장으로 일했으며 가족 농장도 운영했다. 퍼타키는 픽스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예일 대학교에 진학하여 1967년 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컬럼비아 법학대학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정치 경력의 시작
퍼타키의 첫 선출 직위는 1981년 자신의 고향인 픽스킬 시장이었으며 1983년 재선되었다. 이후 1984년 뉴욕주 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1992년까지 재임했고, 1992년에는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뉴욕주지사 재임
1994년 퍼타키는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시 3선에 성공했던 현직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Mario Cuomo)를 누르는 이변을 일으키며 당선되었다. 이는 1923년 이후 공화당원으로서는 넬슨 록펠러 이후 처음으로 뉴욕주지사직을 차지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후 1998년과 2002년 선거에서도 연속 승리하여 3선에 성공했다. 퍼타키 이후로 뉴욕주지사에 당선된 공화당원은 아직 없다.
주지사 재임 기간 동안 퍼타키는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 인하, 학교 재산세를 낮추는 STAR 프로그램 창설, 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 환경 보호 프로그램, 자율형 공립학교(charter school) 도입 지지 등을 추진했다. 또한 뉴욕주의 신용 등급을 세 차례 상향시키는 데 기여했다. 다만 1995년 사형 제도 부활 법안을 제정했으나 이후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2001년 9·11 테러 공격 이후에는 당시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와 협력하여 주와 도시의 대응을 이끌었고, 세계 무역 센터 현장의 재건을 관리하는 로어 맨해튼 개발공사(LMDC) 설립에 관여했다.
주지사 퇴임 이후
2007년 주지사직을 떠난 퍼타키는 로펌에 합류했고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한 상담 회사를 설립했다. 2008년과 201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고려했으나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2015년 5월 그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낮은 지지율로 인해 같은 해 12월 29일 중도 사퇴했다. 이후 마코 루비오, 존 케이식 후보를 차례로 지지했다.
개인 생활
퍼타키는 1973년 리비 로랜드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