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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의 재정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개인 재정과 공적 재정 정책 양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그는 당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개인 재산 규모

워싱턴의 사망 당시 순자산은 약 78만 달러로 평가되었다. 이는 2020년 기준 약 5억 9,420만 달러, 당시 미국 GDP의 약 0.19%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그러나 그의 부는 대부분 토지, 농장, 노예 등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산은 많지만 현금은 부족한(asset-rich, cash-poor)' 상태였다.

재산의 원천

워싱턴의 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축적되었다. 첫째, 측량사로서의 활동과 토지 투기를 통해 상당한 토지를 확보하였다. 둘째, 부유한 미망인 마사 댄드리지 커스티스(Martha Dandridge Custis)와의 결혼을 통해 막대한 자산을 상속받았다. 셋째, 마운트 버넌(Mount Vernon) 농장을 운영하며 담배, 밀, 옥수수 등을 재배하였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위스키 양조장 중 하나를 소유·운영하여 사망 당시 약 11,000갤런을 생산하였다. 넷째, 대통령 재임 시절 연봉 25,000달러(당시 총 정부 예산의 약 2%)를 수령하였다.

부채와 재정적 어려움

상당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평생 동안 상당한 부채를 안고 있었다. 영국이 부과한 높은 세금이 수입의 약 75%를 소비하였고, 독립 전쟁 기간 동안 농장이 방치되면서 수익이 감소하였다. 또한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과 손님 접대 비용으로 인해 매년 수확물 판매 수입을 예상하여 생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빚을 졌다. 혁명 이후 경제 침체로 토지를 매각하거나 임대하기 어려워 자산은 많지만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전시 재정 관리

대륙군 총사령관 재임 기간(1775~1783) 동안 워싱턴은 48,000달러의 급여 수령을 거절하고 대신 개인 경비 계좌를 통해 상환받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그의 경비 계좌는 총 449,261.51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의회의 재정 지원 부족으로 군대는 지속적인 보급난과 급여 체불에 시달렸고, 워싱턴은 병사들의 식량, 전쟁 포로 급식, 첩보 활동 자금 조달 등 여러 재정적 문제에 직면했다.

대통령으로서의 경제 정책

1789년 대통령 취임 당시 워싱턴은 막대한 혁명 전쟁 부채와 인플레이션으로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을 마주했다. 그는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하고, 연방 정부의 주정부 부채 인수 및 전액 상환, 전시 채권의 액면가 상환, 국립 은행 설립을 골자로 한 3단계 경제 안정화 계획을 추진하였다. 또한 1791년 제조업 보고서(Report on Manufactures)를 통해 국내 제조업 육성을 장려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18세기 마지막 10년간 미국의 1인당 GDP는 연평균 9.78% 성장하였으며, 이는 20년 후 영국의 1인당 생산량과 일치하는 수준이었다.

유산

워싱턴은 1799년 사망 당시 유언장을 통해 52,194에이커에 달하는 토지의 처분 및 분배를 명시하였으며, 자신이 소유한 노예들에 대한 사후 해방 조치를 포함시켰다. 그의 재정 기록(회계 장부, 영수증, 청구서 등)은 '조지 워싱턴 재정 문서 프로젝트(George Washington Financial Papers Project)'를 통해 디지털 아카이브로 보존되어 학술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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