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조지 스타이너(Francis George Steiner, 1929년 4월 23일 ~ 2020년 2월 3일)는 프랑스계 미국인 문학 비평가, 수필가, 철학자, 소설가, 교육자이다. 그는 언어, 문학, 사회의 관계와 홀로코스트( Holocaust)의 영향에 관해 광범위하게 저술한 인물로,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인문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생애
조지 스타이너는 1929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서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의 고위 변호사였으며, 반유대주의의 위협을 피해 5년 전에 가족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랑스로 이주시킨 상태였다. 스타이너는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의 세 가지 모국어를 가지고 자랐으며, 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고대 그리스어 원전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하자, 스타이너의 가족은 뉴욕으로 피신했다. 이 경험은 그가 '생존자'라는 의식을 갖게 하였고, 이후 그의 저작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문학과 수학, 물리학을 공부하여 1948년 학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1950년)를,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수석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5년 역사학자 자라 샤코우(Zara Shakow)와 결혼하였다.
학문 및 저술 활동
스타이너는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처칠 칼리지의 창립 펠로우가 되었고, 1974년부터 1994년까지 20년간 제네바 대학교에서 영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네 개 언어로 강의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1994~1995)와 하버드 대학교(2001~2002)에서도 교수직을 역임했다.
그의 첫 저서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Tolstoy or Dostoevsky, 1960)였으며, 《비극의 죽음》(The Death of Tragedy, 1961)은 그의 박사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저서는 《바벨 이후》(After Babel, 1975)로, 번역학 분야에 초기이자 영향력 있는 기여를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 《푸른수염의 성에서》(In Bluebeard's Castle, 1971), 《언어와 침묵》(Language and Silence), 《창조의 문법》(Grammars of Creation, 2001) 등의 저서가 있다.
소설 작품으로는 단편집 《주님의 해》(Anno Domini, 1964)와 논쟁적인 중편 《A. H.의 산크리스토발 행》(The Portage to San Cristobal of A.H., 1981)이 있다. 후자는 아마존 정글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생존해 있다는 설정의 작품이다.
사상과 평가
스타이너는 언어와 문명, 홀로코스트 이후의 문화적 위기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는 "인간의 언어로 사랑하고, 건설하고, 용서하는 동시에 고문하고, 미워하고, 파괴하고 전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로움이 자신 사유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중언어 구사자이자 박식가(polymath)로 알려졌으며, 영국 소설가 A. S. 바이엇은 그를 "후기 후기 후기 르네상스인"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2001년 《가디언》지에서 "다중언어 구사자이자 박식가"로 소개되었으며, 같은 해 커뮤니케이션 및 인문학 부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Prince of Asturias Award)을 수상했다. 또한 영국 아카데미 펠로우(FBA)로 선출되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사망
조지 스타이너는 2020년 2월 3일, 영국 케임브리지의 자택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