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본명: Jorge Agustín Nicolás Ruiz de Santayana y Borrás, 1863년 12월 16일 ~ 1952년 9월 26일)는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8세 때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하였으며, 평생 스페인 국적을 유지하였다.
생애
186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아버지 Agustín Santayana와 어머니 Josefina Borrás로, 어머니는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들을 미국에서 키우기로 한 약속 때문에 1869년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1872년 아버지와 함께 보스턴으로 간 조지 산타야나는 보스턴 라틴 스쿨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 진학, 1886년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베를린 대학교에서 2년간 철학을 연구하고 하버드로 돌아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89년 하버드 대학 철학과 교수진에 합류하여 윌리엄 제임스, 조사이어 로이스(Josiah Royce)와 함께 활동하였다.
1912년 어머니 사망을 계기로 하버드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이후 영국(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프랑스(파리)等地를 거쳐 1924년 이탈리아 로마에 영구 정착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로마의 가톨릭 수녀원 부속 요양소에서 지냈으며, 1952년 9월 26일 로마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로마의 Campo Verano 공동묘지 스페인 묘역에 안장되었다.
철학 사상
산타야나의 철학은 어느 특정 학파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의 사상은 자연주의(Naturalism)와 유물론(Materialism)을 기반으로 하며, 실재론과 관념론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주요 개념으로는 '동물적 신념(Animal Faith)'과 '본질(Essence)'이 있다. 그는 물질적 실재의 존재는 합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으며, 존재에 관한 모든 신념은 비합리적인 '동물적 신념'에 기반한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인간은 '본질'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 체계는 4권의 저서 《존재의 영역(Realms of Being)》(1927~1940)에서 체계화되었으며, 존재를 '본질의 영역', '질료의 영역', '진리의 영역', '정신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후기에는 정신세계를 완전히 이념적이고 허구적인 세계로 보는 철학적 유물론자로 발전하였다.
종교에 대해서는 무신론자였으나, 자신이 성장한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여 스스로를 '미학적 가톨릭교도(aesthetic Catholic)' 또는 '가톨릭 무신론자'라고 칭하였다.
주요 저서
- 《미감(The Sense of Beauty)》(1896) — 미학 분야의 주요 저서로, 아름다움을 '대상화된 쾌락(pleasure objectified)'으로 정의하였다.
- 《시와 종교의 해석(Interpretations of Poetry and Religion)》(1900)
- 《이성의 삶(The Life of Reason)》(5권, 1905~1906) — 하버드 시절의 대표적 저서로, '인간 진보의 단계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 《세 명의 철학 시인(Three Philosophical Poets)》(1910)
- 《회의주의와 동물적 신념(Scepticism and Animal Faith)》(1923)
- 《존재의 영역(Realms of Being)》(4권, 1927~1940)
- 《최후의 청교도(The Last Puritan)》(1935) — 유일한 소설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인간과 장소(Persons and Places)》(3권, 1944~1953) — 자서전.
영향과 유산
산타야나는 미국 고전 철학(Classical American Philosophy)의 주요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제자로는 T. S. 엘리엇, 로버트 프로스트, 월리스 스티븐스, 거트루드 스타인, W. E. B. 두보이스, 월터 리프먼 등이 있다. 특히 월리스 스티븐스는 그의 미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유명한 경구로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반복하고야 만다(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와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가 널리 알려져 있다. 첫 번째 경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문으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