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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하북 평정

조조의 하북 평정은 중국 후한 말기 삼국지의 한 국면으로, 건안 7년(202년)부터 건안 12년(207년)까지 조조(曹操)가 하북(河北) 지역의 최대 군웅이었던 원소(袁紹)의 사망 이후 그 후계 세력인 원담(袁譚), 원상(袁尙), 원희(袁熙), 고간(高幹) 등을 차례로 토벌하여 기주(冀州), 병주(幷州), 유주(幽州), 청주(靑州)를 평정한 일련의 군사적 과정을 가리킨다.

배경

202년, 관도대전에서 패배한 지 2년 후 원소가 병사하였다. 원소는 생전에 후계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였고, 원소군 내부에서는 장남 원담을 지지하는 세력(곽도, 신평)과 삼남 원상을 지지하는 세력(심배, 봉기) 간의 갈등이 존재했다. 심배 등은 원소의 유명(遺命)을 칭탁하여 원상을 후계자로 세웠고, 이에 반발한 원담은 스스로 거기장군이라 칭하고 여양(黎陽)에 주둔하며 형제 간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전개

  1. 여양 전투(202~203년): 조조가 황하를 건너 원담을 공격하자 원상이 원담을 도와 공동으로 방어했다. 203년 2월~3월경 조조가 여양성을 포위하자 원담과 원상은 업(鄴)으로 도주했다. 이후 곽가의 조언에 따라 조조는 일단 허도로 철수하며 원씨 형제의 내분을 기다렸다.

  2. 평양 전투: 원상은 하동(河東) 지역을 공략하여 조조를 우회하려 했으나, 종요(鍾繇)와 마등(馬騰), 마초(馬超), 방덕(龐德) 등이 이를 격파하고 곽원(郭援)을 전사시켰다.

  3. 원담과 원상의 내전: 조조가 철수하자 원담과 원상의 내전이 재개되었다. 원담이 원상에게 패하자 곽도의 계략으로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조조는 순유(荀攸)와 신비(辛毗)의 조언을 받아들여 원담과 화친하고 원상을 공격했다.

  4. 업 전투(204년): 조조는 원상이 원담을 공격하러 간 틈을 타 업성을 포위 공격했다. 장수(漳水)를 끌어들인 수공(水攻)과 장기간의 포위 끝에 204년 8월, 심배의 조카 심영(審榮)이 성문을 열어 업성이 함락되었다. 심배는 생포되어 처형되었다. 이후 병주의 고간이 항복했다.

  5. 남피 전투(205년): 원담이 약속을 어기고 영토를 확장하자 조조는 혼인 관계를 끊고 원담을 공격했다. 205년 1월, 조조가 친히 북을 잡고 독려하여 원담을 격파하고 참수했다.

  6. 유주 평정 및 오환 정벌(205~207년): 원상과 원희는 오환(烏桓)으로 도망갔고, 조조는 207년 오환을 정벌하여 이들을 최종적으로 격파했다. 이로써 하북 지역은 완전히 조조의 수중에 들어갔다.

의의

조조의 하북 평정을 통해 조조는 명실상부 후한 말 최강의 군웅으로 부상하였으며, 천하통일에 가장 근접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 평정으로 조조는 원소의 영토였던 기주, 병주, 유주, 청주 등 4주를 장악하여 중원의 패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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