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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키노 로시니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Gioachino Antonio Rossini, 1792년 2월 29일 ~ 1868년 11월 13일)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다. 39편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성악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종교곡 등을 작곡하였다.

주요 생애 및 업적은 다음과 같다.

초기 생애와 교육 1792년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트럼펫 연주자이자 시청 나팔수였던 아버지 주세페 로시니와 재봉사이자 가수였던 어머니 안나 구이달리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극단을 돌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으며, 볼로냐의 리체오 필라르모니코(Liceo Philharmonico)에서 첼로와 대위법을 전공하였다.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전성기 1810년 첫 오페라 《결혼 계약(La cambiale di matrimonio)》으로 데뷔한 후, 1813년 《탄크레디(Tancredi)》와 《이탈리아 여자인 알제리의 터키인(L'italiana in Algeri)》이 연이어 성공하며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후 나폴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1816), 《신데렐라(La Cenerentola)》(1817), 《도둑까치(La gazza ladra)》(1817), 《모세(Mosè in Egitto)》(1818), 《세미라미데(Semiramide)》(1823) 등 다수의 걸작을 발표했다. 그는 '벨칸토(Bel canto)' 오페라의 완성자로 평가받으며, 빠르고 화려한 기교, 리듬적 활력, 독창적인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유명한 '로시니 크레셴도(Rossini crescendo)' 기법으로 당대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 시기 및 은퇴 1824년 파리로 이주하여 이탈리아 극장 감독과 왕립 음악원 감독 등을 역임했다. 1829년 마지막 오페라인 《빌헬름 텔(Guillaume Tell)》을 초연했는데, 이 작품은 프랑스 그랑 오페라 양식을 수용하여 서곡의 규모와 극적 구성에서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빌헬름 텔》 이후 37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오페라 작곡에서 은퇴하였다. 정확한 은퇴 이유는 건강 악화(비뇨기계 질환 추정), 당대 오페라 경향의 변화(낭만주의 대두), 경제적 안정을 이뤘음 등이 복합적으로 거론되나 단정적인 학설은 없다.

말년과 작품 활동 은퇴 후에도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1832, 1841 완성), 《작은 장엄 미사(Petite messe solennelle)》(1863) 등 종교곡과 피아노 소품집 《노년의 죄악(Péchés de vieillesse)》 등을 작곡하며 음악 활동을 지속했다. 1855년 파리 근교 파시(Passy)로 거처를 옮겨 살롱을 열며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다 1868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유해는 처음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88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음악사적 의의 로시니는 19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Opera buffa)와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의 관례를 집대성하고 극적 사실성과 음악적 통일성을 높여 차세대 작곡가인 벨리니, 도니체티, 초기 베르디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도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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