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의 묘(趙愼의 墓)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 산 168-1번지에 위치한 고려 후기 문신 조신(趙愼)의 묘소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2021년 지정 번호 체계 개편과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현재는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인물 조신
조신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본명은 조사렴(趙思廉)이다. 고려 말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문신으로, 봉상대부(奉常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368년(공민왕 17) 그의 형 조사공이 신돈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꾸미다 발각되어 처형되자, 조사렴은 이름을 조신으로 바꾸고 부여 임천(林川) 지역에 은거하였다. 이후 부여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당대의 저명한 학자였던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와 교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조선 태종 이방원의 어린 시절 스승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 그의 자손들을 관직에 등용하고 후대하였다고 한다. 조신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문헌상 확인되지 않는다.
묘소의 변천과 구조
조신의 묘는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묘자리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며 훼손된 후 17세기에 다시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묘역 앞에는 두 개의 묘비가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의 묘비는 17세기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사각형 대좌 위에 둥근 머리의 비신을 세운 형태이다. 오른쪽의 묘비는 1734년(영조 10)에 다시 세운 것으로, 2중 사각형 대좌 위에 오석 비신을 세우고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을 올린 구조이며 높이 200cm, 너비 72cm, 두께 42cm 규모이다. 이 비문은 후손 조최수가 글을 짓고 조현명이 글씨를 썼다. 왼쪽 묘비에는 '고려국 봉상대부 회양부사 조공휘신지묘(高麗國 奉常大夫 淮陽府使 趙公諱愼之墓)'라고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 묘비에는 조신의 생애와 가족 관계, 후손 등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주변 시설
묘소 인근에는 조신을 제사 지내는 재실(齋室)인 덕림병사(德林丙舍)가 있으며, 이 역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묘역의 소유 및 관리는 조씨 문중(종중)이 맡고 있다.
의의
조신의 묘는 고려 말 부여 지역에 은거한 조신의 생애와 활동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특히 두 개의 묘비가 남아 있어 묘비의 건립 경위와 시기별 묘비 형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