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 5인(長州五傑, Chōshū Five)은 일본 에도 시대 말기인 1863년(분큐 3년), 조슈번(현재의 야마구치현)에서 영국으로 밀항하여 유학한 다섯 명의 무사를 가리킨다. 당시 일본은 쇄국 정책으로 인해 해외 여행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조슈번은 서양 문물을 습득하여 번을 강화하고 막부 타도에 활용하고자 이들의 밀항을 비밀리에 지원하였다.
구성 인원
조슈 5인을 구성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당시 이름은 이토 슌스케. 이후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 당시 이름은 이노우에 몬타. 메이지时期의 주요 정치가이자 외교 관료로 활동하였다.
- 야마오 요조(山尾庸三) — 공학 기술자로, 일본 공학 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 엔도 긴스케(遠藤謹助) — 조폐(화폐 주조)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 — 당시 이름은 노무라 야키치. 일본 철도의 아버지로 불린다.
역사적 배경과 경과
조슈번은 서양 국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군사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다섯 명의 유망한 젊은이를 선발하였다. 이들은 주일 영국 영사 아벨 가워(Abel Gower)와 자딘 매터슨 회사(Jardine Matheson, 당시 요코하마의 영일번관)의 윌리엄 케직(William Keswick) 등의 협력을 얻어 밀항을 실행하였다.
1863년 6월 27일, 이들은 자딘 매터슨 상회의 배(첼즈윅 호)를 타고 요코하마를 출항하여 상하이를 거쳐 그해 11월 4일 런던에 도착하였다. 런던에서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알렉산더 윌리엄슨(Alexander Williamson)의 지도로 공부하였다.
유학 중이던 1864년,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는 조슈번이 서양 연합국과 군사 충돌(시모노세키 전쟁)에 직면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여 번의 여론을 개국 쪽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나머지 세 명(엔도, 노무라/이노우에 마사루, 야마오)은 더 오랜 기간 영국에 머물렀다.
의의와 기념
이 다섯 명은 귀국 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헌법 제정과 정치 제도 정비를 주도하였고, 이노우에 가오루는 외교·재정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이노우에 마사루는 철도청 초대 청장으로서 일본 철도망 구축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야마오 요조는 공학 교육 기관 설립에 기여하였다. 엔도 긴스케는 조폐국 운영을 담당하였다.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는 이들을 기념하는 '조슈 파이브'(Choshu Five)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2003년에는 일본 야마구치시에도 동일한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2006년에는 이들의 여정을 주제로 한 영화 《조슈 파이브》가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