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曹純, 170년?~174년? ~ 210년)은 중국 후한 말 조조(曹操) 휘하의 무장으로, 자는 자화(子和)이다. 패국 초현(沛國譙縣, 현재의 안후이성 보저우) 출신이며, 조인(曹仁)의 동복 동생이자 조조의 족제(族弟)이다.
생애
조순은 14세 때 부친을 여의고 형 조인과 따로 살았다. 부친의 유산을 이어받아 가산이 넉넉해 시종과 빈객이 수백 명에 달했으나, 조순이 기강으로 바로잡아 도리를 잃지 않아 향리에서 인재로 평가받았다. 학문을 좋아하고 선비들을 공경하여 많은 선비들이 귀부했으며, 이로 인해远近에서 칭송을 받았다.
18세에 황문시랑(黃門侍郎)이 되었고, 20세에 조조를 따라 양읍(襄邑)에서 군사를 모집했다. 이후 의랑(議郞), 사공군사(司空軍司)를 지냈다.
조조군의 최정예 기병 부대인 호표기(虎豹騎)의 지휘관을 맡아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남피(南皮)에서 원담(袁譚)을 포위했을 때, 조순이 이끄는 호표기가 원담의 목을 베었다. 206년(건안 11년) 오환(烏桓) 정벌 당시에도 호표기를 이끌고 선우 답돈(蹋頓)을 참살했다. 208년(건안 13년) 장판파(長坂坡) 전투에서는 유비(劉備)의 두 딸과 군수 물자를 노획하고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했으며, 강릉(江陵)을 항복시키는 공을 세웠다.
사망과 사후
적벽대전(赤壁大戰) 이후 조순이 병사하자, 조조는 매우 애석해하며 호표기의 후임 지휘관을 따로 뽑지 않고 휘하에 직속시켰다고 한다. 이후 호표기는 조휴(曹休), 조진(曹眞) 등이 이끌게 되었다. 조비(曹丕)가 황제에 즉위한 후, 조순을 위후(威侯)로 추증했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순은 적벽대전 이후 남군(南郡) 공방전에 조홍(曹洪)과 함께 조인(曹仁)을 돕기 위해 출진하나, 큰 비중 없이 등장한다.
평가
조순은 정사 《삼국지》에서 조조군 최정예 기병대인 호표기를 지휘한 장수로 기록되어 있으며, 원담과 답돈을 직접 참수한 전공이 전한다. 다만 사망 시기가 비교적 이르고(210년) 기록이 많지 않아, 그의 군사적 역량에 대한 상세한 평가는 제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