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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극동맹

조선연극동맹(朝鮮演劇同盟)은 1945년 12월 20일, 미군정 지역에서 결성된 연극인 단체이다.

결성 배경

태평양 전쟁 종전 직후, 다양한 이념적 성향의 연극인들이 모여 조선연극건설본부(약칭 연건)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내부 갈등으로 우익 계열이 탈퇴하고, 좌익 강경파가 1945년 9월 27일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을 별도로 결성하면서 분열되었다. 이후 조선연극건설본부에 남은 연극인들은 해체를 선언하고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에 합류하여 12월 20일 조선연극동맹을 창립하였다.

강령

조선연극동맹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일본 잔재의 소탕
  2. 봉건 잔재의 청소
  3. 국수주의 배격
  4. 진보적 조선연극의 수립
  5. 국제연극과의 제휴

활동

조선연극동맹은 산하에 전속 극단으로 조선예술극장을 두고 진보적 연극운동을 펼쳤다. 주요 공연 작품으로는 1946년의 《독립군》, 《3·1 운동》, 《3·1 운동과 만주영감》, 1947년의 《태백산맥》, 《위대한 사랑》 등이 있다. 주요 극작가로는 조명암, 김남천, 박노아, 박영호, 함세덕 등이 참여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의 항일 운동을 소재로 한 경향파 연극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연극운동의 대중화를 추진하며 활발한 대중 활동을 전개하였다.

성격과 소멸

조선연극동맹은 좌익 계열의 연극인 단체로, 유치진을 중심으로 한 우익 연극인 단체인 극예술협회(전국연극예술협회)와 대립 관계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신파극 출신 인물들은 주로 조선연극동맹에, 신극 종사자들은 극예술협회로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1947년 10월 우익 계열의 전국연극예술협회가 결성될 때까지 연극계를 주도하는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좌익 계열 탄압으로 활동이 위축되었고, 많은 구성원들이 38선 이북으로 월북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송영, 나웅, 신고송, 이서향, 안영일 등이 있으며, 이들은 이후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하였다. 제1공화국 출범으로 분단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활동이 중지되었다.

참고 자료

  •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비, 2006.
  • 조영복, 《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돌베개, 2002.
  • 위키백과 "조선연극동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연극동맹"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일보 1946년 1월 6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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