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는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된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에 기반한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며 여기에 흡수·통합되었다.
창립 배경
1920년대 초반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과 경성고무공장·인천정미소 여성노동자 파업 등 대중운동의 확산을 배경으로, 주세죽·정칠성·허정숙·정종명·박원희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박원희, 정종명, 김필애 등이 주도하여 1924년 5월 4일 발기하고, 같은 해 5월 10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발기인으로는 박원희·정종명·김필애·정칠성·김현제·홍순경·오수덕·고원섭·우봉운·지정신·주세죽·김성삼·허정숙·이춘수 등 14명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다.
강령과 성격
종래의 계몽적 여성교육론을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을 주장하였다. 창립 선언문에는 "여자는 가정과 임금과 성의 노예가 될 뿐"이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으며, 주요 강령은 ① 사회진화법칙에 의한 신사회 건설과 신여성운동에 설 일꾼의 훈련과 교양을 기함 ② 여성해방운동에 참가할 여성의 단결을 기함 등이었다.
이 단체는 여성문제의 근원을 경제조직의 불합리에서 찾고, 여성해방은 무산계급의 해방이 전제되어야 하며, 여성운동의 목표는 여성의 독립과 자유 확보, 모성보호, 남녀동등의 사회제도 실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기독교계 여성들이 주도하던 당시의 교육·계몽 중심 여성운동을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확장한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활동과 변천
창립 초기에는 무산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강연회 개최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사회적 호응이 미약하여 발회식에는 발기인 외의 여성 참석자가 거의 없었고, 창립 2년여 만에 회원이 70여 명으로 늘어났다.
1925년 사회주의 계열의 파벌 분쟁에 연동되어 경성여자청년동맹과 경성여자청년회로 분파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다. 1926년 민족유일당운동이 추진되는 가운데 도쿄 유학생 황신덕·이현경·정칠성 등이 귀국하여 여성동우회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여성운동을 통합·활성화하였다. 이후 1927년 여성 단일단체인 근우회가 조직되면서 조선여성동우회는 이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여성운동에 흡수·통합되었다.
역사적 의의
조선여성동우회는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로서, 여성 사회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창립 이래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적극적인 활동에는 제약이 있었으나, 여성운동을 계몽 단계에서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