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배경 및 창립: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하에 억압되었던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급격히 성장하고 자주적인 노동운동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공산당(이후 남조선로동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들은 전국적인 노동자 조직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이에 따라 각 지역과 산업별로 자생적으로 결성되던 노동조합들을 통합하여 1945년 11월 12일 서울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결성했다. 초대 의장은 허헌이 맡았다.

주요 활동: 전평은 창립 직후부터 노동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익 옹호를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주요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 경제적 요구: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해고 반대, 단체교섭권 보장 등.
  • 정치적 요구: 토지 개혁, 친일파 숙청, 민족 자결권 확보, 미군정 반대, 사회주의 국가 건설 지향 등.

전평은 1946년 9월 총파업(이른바 9월 총파업)을 주도하며 미군정의 정책에 강력히 저항했다. 이 파업은 단순한 노동 운동을 넘어선 정치적 성격을 띠었으며, 대구 10월 항쟁과 같은 민중 항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또한, 미군정의 '미곡 수집령'과 같은 정책에 반대하며 시위와 투쟁을 이어갔다.

대립과 해체: 전평은 좌익 계열의 노동조직으로서 미군정과 초기 대한민국 정부의 탄압을 받았으며, 우익 계열의 노동조직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1948년 12월, 미군정은 전평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해산 명령을 내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탄압은 계속되었고, 1949년에는 완전히 해체되거나 조직원들이 지하로 숨거나 월북하는 등 사실상 소멸했다.

영향 및 의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좌우익 이념 대결의 최전선에 있었던 대표적인 조직 중 하나였다. 비록 남한에서는 해체되었지만, 한국 노동운동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며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북한에서는 전평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조선직업총동맹'을 결성하기도 했다. 전평의 활동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동운동과 이념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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