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화당(朝鮮共和黨)은 1947년 미군정기 해방정국에서 창당된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이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1석을 얻었으나,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등록이 취소되어 소멸하였다.
개요
조선공화당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김약수(金若水)가 주도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김약수는 광복 후 좌익 노선에서 이탈하여 중간파(중도파) 노선을 취하였으며, 김규식의 좌우 합작 운동을 지지하였다.
역사
김약수와 원세훈은 김규식의 좌우 합작 운동을 지지하며 한국민주당(한민당)을 탈당하여 민중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민중동맹 결성 초기부터 김약수와 원세훈은 노선 차이로 갈등을 빚었고, 이에 김약수는 여러 사회단체와 합동대회를 개최하여 1947년경 조선공화당을 창당하였다.
1947년 6월 3일자 자료(서울신문 1947년 6월 5일 기사)에 따르면, 조선공화당의 부서 임원은 다음과 같다:
- 서기장: 김약수
- 당무부: 한동찬
- 조직부: 박희철
- 선전부: 김약수
- 재정부: 함백효
- 외교부: 조진규
- 정보부: 이용범
- 상무위원: 김약수, 서세충, 이순탁 외 27인
- 감찰위원: 김두익 외 18인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선공화당은 경상남도 동래군 선거구에 김약수를 출마시켜 당선시켰다. 이는 조선공화당이 얻은 유일한 국회의석이었다. 당시 조선공화당의 전국 득표수는 17,455표(득표율 0.26%)였다.
제헌 국회 시기 김약수는 군소정당과 협력하여 민족공화당을 결성하고자 하였으나,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국회 내 좌익 간첩 사건)에 김약수가 연루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서 조선공화당은 등록이 취소되어 해산되었다.
성격
조선공화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였으며, 중도우파적 성향의 정당으로 분류된다. 당시 12개 정당협의회(중도파 정당 연합)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창당 주역인 김약수는 초기 사회주의 운동가 출신이었으나 광복 후 반공·보수 노선으로 전환한 인물이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공화당 부서 임원 발표」(서울신문, 1947.6.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약수」 항목
- 위키백과, 「조선공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