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시대 범위
조선 후기의 문학은 임진왜란(1592) 이후부터 1894년 갑오경장에 이르는 약 300년간의 문학을 가리킨다. 이 시기는 전란을 겪으면서 사회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문학 또한 그 영향을 받아 이전 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조선 사회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양반 귀족 계층의 무력함이 드러나면서 평민들의 자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또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치우친 기존의 성리학적 학풍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 사회 개량과 국민의 복리 증진을 추구하는 실학(實學) 사상이 대두되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표방한 이 학풍은 이수광,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으로 이어졌다.
시가 문학
조선 후기 시가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평민들의 참여 확대와 사설시조(辭說時調)의 발달이다. 기존의 양반 중심 시가에서 벗어나 중인 계층과 평민들이 시가 창작에积极参与하게 되었다.
시조 분야에서는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1728), 김수장의 《해동가요》, 박효관·안민영의 《가곡원류》 등 여러 가집(歌集)이 편찬되었다. 평민 출신 가객들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향락적·연정적인 내용의 사설시조가 많이 창작되었다. 한편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나 <산중신곡>과 같은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도 여전히 창작되었다.
가사 문학에서는 박인로가 <태평사>, <선상탄>, <누항사> 등을 남겼으며, 후기에는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홍순학의 <연행가>, 김진형의 <북천가> 등 장편 가사가 등장하였다. 또한 영남 지역 부녀자들에 의해 창작된 내방가사(內房歌辭)가 다수 전한다.
소설 문학
조선 후기는 한국 소설 문학이 본격적으로 발흥한 시기이다. 한글이 보편화되면서 한글 소설이 크게 유행하였고, 중국의 명말·청초 소설 문학의 영향도 함께 작용하였다.
김만중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지어 국문 소설의 수준을 높였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국문 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영조·정조 시대에는 박지원이 한문 소설을 통해 현실 비판을 행하였으며, <양반전>, <호질>, <허생전> 등이 대표적이다.
전쟁을 소재로 한 군담소설(<임진록>, <유충렬전>, <조웅전>), 몽자류 소설(<옥루몽>, <옥련몽>), 그리고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토끼전>, <흥부전>, <심청전>, <콩쥐팥쥐>) 등 다양한 유형의 소설이 창작되었다. 19세기에는 <완월회맹연>(180권 분량)과 같은 대하소설도 등장하였다. 세책가(貰冊家)라는 책 대여업이 생겨날 정도로 소설의 대중적 향유가 활발하였다.
판소리와 서민 문학
판소리는 광대가 소설의 줄거리를 아니리(독백)와 타령(창)을 섞어 전달하는 공연 예술로, 조선 후기 서민 문학의 핵심 장르이다.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토끼타령>, <가루지기타령> 등이 대표적이며, 19세기 후반 신재효가 판소리 열두 마당을 정리하였다.
잡가(雜歌)는 해학과 풍자성이 강한 노래로 도시 평민 사이에서 유행하였고, 탈춤(가면극)과 인형극(꼭두각시극)도 성행하였다.
위항 문학
19세기에는 중인·서얼 계층을 중심으로 위항 문학(委巷文學)이 발달하였다. 이들은 송석원, 칠송정 등 한양의 명승지를 중심으로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옥계시사, 서원시사, 비연시사, 직하시사 등이 대표적이며, 조희룡, 조수삼, 정수동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의의와 특징
조선 후기 문학의 핵심적 특징은 창작 주체의 확대와 장르의 다양화이다. 문학의 향유층이 양반에서 중인, 평민으로 확대되었고, 실학 사상의 영향으로 현실 비판적·풍자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시가·소설·판소리·가면극 등 다양한 장르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였으며, 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근대 문학으로의 이행을 준비한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다.